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 도입되자 “은행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1980년 약 50만명이던 미국 은행원 수는 2010년 60만명으로 도리어 늘었다. ATM 보급으로 지점당 직원 수는 평균 20명에서 13명으로 줄었지만, 은행업 자체가 성장하면서 점포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 후 미국 은행원 수가 2024년 35만명으로 줄어든 것은 ATM이 아니라 모바일 뱅킹 때문이었다.
▶현대차가 로봇을 생산 현장에 투입하려는 계획에 대해 노조가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할 법한 인간과 로봇의 대결이 현실화된 것이다. 같은 회사 노조 안에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을 ‘노·노 갈등’이라고 했는데 노조와 로봇의 대립은 ‘노·로 갈등’이라고 불러야 하나.
▶로봇 개발 속도는 업무의 표준화 여부와 가성비에 달려 있다. 물류창고의 재고 분류 작업이나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작업처럼 업무가 표준화된 업종에서 산업용 로봇이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다. 또 인건비가 비쌀수록 로봇 수요가 늘어난다. 지금은 간병인을 쓰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지만, 간병 비용이 치솟게 되면 간병 로봇 개발이 빨라질 것이다.
▶로봇이 기존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지만, 미국 은행원의 경우처럼 신산업 출현을 촉진해 경제 전체의 고용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내연기관 발달은 마차 끄는 마부들을 실업자로 만들었지만, 자동차 산업을 탄생시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작년 12월 미 샌프란시스코의 대규모 정전 사태로 수백 대의 로보택시 운행이 전면 중단돼 승객들이 차 안에 갇혔을 때 긴급 출동 알바가 인기였다. 전기 고장으로 차량 내부에서 열 수 없는 문을 바깥에서 수동으로 열어주고 건당 22~24달러를 받았다. 로보택시가 택시기사를 없앴지만 새로운 일자리 수요도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현대차의 ‘노·로 갈등’은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제조업을 넘어 물류·의료·돌봄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벌어질 미래의 예고편이다. 로봇과 인간의 일자리 쟁탈전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로봇이 키울 경제적 파이를 어떻게 나누고,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을 위한 재교육과 사회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지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현대차 사례가 로봇과의 공존과 발전을 위해 치러야 할 성장통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