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퇴계 이황에게 술은 덕을 잃지 않는 호연지기의 통로였고, 다산 정약용에게 술은 기분 좋은 취기에서 멈출 줄 아는 절제의 미학이었다. 술기운에 진심을 싣는다는 취중진담이 풍류로 대접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술은 낭만과 폭력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 사회에선 만취 폭력도 “술 때문”이라면 봐주는 분위기가 뿌리내렸다. 우리나라에서 살인 등 각종 강력 범죄 현장엔 거의 예외없이 술병이 나뒹굴고 있다.

▶2012년 조선일보의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연중 기획은 만취 폭력에 관대한 비정상 사회의 현장을 매일 보도했다. 당시 취재팀이 서울 어느 파출소에서 목격한 50대 대기업 부장의 모습은 주폭(酒暴)을 세상에 보여준 장면이었다. 러닝 셔츠가 드러난 차림에 한쪽 발엔 슬리퍼, 다른 발은 새까만 맨발인 채 환갑의 경찰관에게 “너는 뭐냐?”고 고함을 쳤다. 평소엔 존경받는 가장이자 유능한 직장인이었을 그가 술만 취하면 주폭으로 돌변했다. 그런 사람들로 전국의 파출소들이 매일 밤 몸살을 앓는다. 주폭은 경찰관을 향해 소변을 보기도 한다.

▶2012년 부산시는 전국 최초로 만취자 대상 ‘병원 내 응급의료센터’를 만들었다. 10여 년 시행착오 끝에 진화된 모델인 부산 주취해소센터가 지난 4일로 개소 1000일을 맞았다. 경찰과 소방, 의료 기관이 함께 하는 이곳은 그동안 1500명이 넘는 취객을 관리했다. 의학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 현장은 아름다울 수 없다. 주취해소센터는 폭언과 발길질, 오물의 전장(戰場)이 되곤 한다. 하지만 밤마다 주폭 주정꾼에 시달리던 경찰관들이 민생 치안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게 됐다. 부산을 성공 모델로 서울 6곳을 비롯, 대구·인천·광주 등 전국 20여 곳으로 확산됐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주취를 범죄예비자로 간주한다. 미국의 많은 주는 공공장소에서 술병을 들고 다니기만 해도 체포한다. 취해서 비틀거리거나 심지어 술집에서 언성을 높여도 체포한다. 독일과 영국은 술 깬 취객에게 다음 날 거액의 보호료를 물린다. 술로 낭비된 국가 행정력의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음주 전과자는 채용에서 배제하기도 한다. 선진국 청년들에겐 자기소개서에 ‘술을 마신다’라고 쓰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술은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윤활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여야 한다. 그 선을 넘어가면 알코올 폭력배일 뿐이다. 이 경우 형량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주취해소센터가 필요 없게 되는 사회가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