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의 인터뷰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샐러리맨에서 대그룹 회장이 되고 또 샐러리맨 최초의 명예회장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인터뷰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사무실과 집의 머리 맡에 해병 군복과 전투화를 놓고 있다는 언급이었다.

▶권 명예회장은 1970년대 연평도에서 해병대 전포대장으로 복무했다. 그 인연으로 전직 해병대 사령관들과의 식사 모임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몇 해 전 모임에서 “해병대 군복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이유를 물었다가 그의 대답을 듣고 숙연해졌다. “군복을 입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을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해병대는 상륙 작전 초기에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이 희생하고 그 후 작전은 젊은 해병들이 맡아야 한다.” 권 명예회장은 전쟁이 나면 어디로 재입대해야 하는지도 물었다고 한다. 권 명예회장이 마라톤 완주를 4번 한 것도 그 준비를 한 것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권 명예회장은 자신의 딸 결혼식 축사에서 부부에게 “나라 없는 설움은 무서운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기습 포격으로 해병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했다. 전사자 조문 때에는 당시 현대오일뱅크 사장이었지만 조문록에 ‘해병 장교 57기 권오갑’이라고 남겼다. 포격 두 달 뒤엔 여전히 전운이 감도는 연평도 진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함께 식사도 했다. 지난해 7월 자신의 소위 임관 50주년 때도 연평 부대를 방문해 위문금을 냈다.

▶그런 권 명예회장이지만 사무실과 집에 해병 군복과 전투화까지 놓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해병 군복과 중위 계급장이 달린 팔각모, 전투화가 나란히 놓인 사진을 보니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이런 해병 베테랑들이 수 만명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요즘 세태에서 ‘애국심’이란 말은 ‘라떼’ 세대의 고리타분한 타령이 되기 십상이다. 권 명예회장은 “내 우선 순위는 나라, 회사, 가족 순”이라고 했는데, 이해 못할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군 고위 관계자로부터 “요즘 청년들이 이기적이고 나약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해야 할 상황이 되면 하는 친구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수 많은 애국 청년들이 우리 곁에 있다. 새해 초에 한 해병 노병과 그의 군복 사진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애국심’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