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요리사 불랑제가 루브르 근처에 가게를 열었을 때, 그가 판 것은 화려한 요리가 아닌 고기 삶은 국물이었다. 가게 앞엔 라틴어로 “위장이 아픈 자들이여, 내게 오라. 너희를 회복(Restaurer)시켜 주리라”는 성경 구절을 변용한 문구를 내걸었다. 이것이 서구식 식당(Restaurant)의 어원이 됐다. 당시 ‘레스토랑’은 기운을 돋우는 음식 자체였다고 한다. 평등한 치유의 공간이었던 레스토랑이 이젠 ‘예약 클릭하는 손가락 속도’와 ‘지갑의 두께’로 좌우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암표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오래전 유명 극장 앞이나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주변엔 늘 모자를 눌러쓴 암표상들이 진을 쳤다. 명절 귀성 열차표를 구하려 서울역 광장에서 밤을 지새우던 시절, 슬그머니 다가와 “표 있어”라고 속삭이던 암표상들은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다. 애써 줄 서는 정직한 기다림을 가로채던 그 암표는 거의 사라졌다고 했는데 요즘 ‘식당 좌석’ 암표가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연말연시 이름난 레스토랑 예약은 ‘전투’이자 ‘재테크’다. 오마카세 열풍으로 시작된 예약 전쟁은 미쉐린 스타 식당을 거쳐 최근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란 기폭제를 만났다. 이 열풍은 인터넷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정점을 찍는다. 최근 이들 플랫폼에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크리스마스 디너 4인 식사권이 80만원의 웃돈이 붙어 올라왔다. ‘광속’ 클릭으로 예약을 한 뒤 이를 파는 것으로 식당 좌석 암표와 다를 것이 없다. 서울 특급호텔 크리스마스 뷔페 좌석 암표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과 런던 등에서도 식당 예약권 매매 사이트가 있다. 인기 식당의 금요일 밤 좌석이 거래되고, 피크 타임 자리를 선점해 되파는 전문 ‘식당 스캘퍼(scalper)’들도 있다. 하지만 식당 암표는 우리나라에서 더 유행할 조짐이다. 우리 사회에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올리는 사진들이 자신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믿는 심리가 유독 강하다. 그러니 화려한 파인다이닝 사진을 올리기 위해 웃돈을 주더라도 식당 암표 구입을 마다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던 레스토랑이었는데, 이제 한국에도 ‘0′이 하나 더 붙는 현기증 나는 가격의 최고급 식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런 식당일수록 암표가 더 고가에 팔린다니 놀랍다.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암표는 단속의 대상이지만 식당 암표는 법 규정이 없어 단속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