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인 풍도는 5개 왕조를 거치며 11명의 황제 밑에서 재상을 지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주군을 수시로 갈아치운 간신이라는 비난과, 5대10국의 혼란기에 백성을 위해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족뿐 아니라 거란족 황제에게도 고개를 숙이고 벼슬을 받은 그를 유학자들은 “짐승보다 못하다”고 했다. 반면 돈을 밝히지 않았고 백성을 학살하려는 황제를 “부처님도 아니고 폐하만 살릴 수 있다”는 말로 설득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프랑스 탈레랑은 귀족 출신 성직자였다.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교회를 등지고 혁명 정부에 가담했다. 나폴레옹의 외교장관이 됐지만 정권 몰락이 예상되자 적국과 내통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비단 양말을 신은 X덩어리”라고 했다. 왕이 복귀하자 다시 외교장관 자리를 얻었다. 기회주의 대명사이지만 나폴레옹 패전 후 프랑스 국익을 지킨 외교술은 인정받는다. 그는 “국가를 배신한 적이 없다. 정부 교체를 조금 먼저 알았을 뿐”이라고 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정적을 국무·재무·전쟁장관에 앉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케네디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군과 CIA 강경파를 폭넓게 썼지만 쿠바 피그스만 침공 실패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링컨은 ‘통합’ 자체가 목적이었고 케네디는 초당적 이미지를 얻으려 했다. 국내에선 노동·운동권 인사들이 3당 합당으로 집권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천을 받았다. 민정당 출신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YS나 DJ를 대놓고 욕하거나 혐오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계열에서 세 번 당선된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에 대해 “실현 불가능한 허구”, “국가 재정 파탄 낼 실험”이라고 했다. 현금성 지원은 “매표 행위”라고 했고 확장 재정도 비판했다.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 정도면 반대가 아니라 혐오에 가깝다.
▶국민은 지지자 설득 없이 눈앞 이익을 먼저 정하는 정치인 변신을 변절로 받아들이곤 한다. 풍도나 탈레랑은 이리저리 자리를 탐했지만 임명권자를 공개적으로 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풍도는 “입은 재앙을 여는 문이고,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링컨이 기용한 반대파도 같은 공화당원이었다. 정파를 초월한 인재 등용에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가 있다. 이 후보자 발탁은 천동설과 지동설의 접점 찾기 수준으로 보인다. 코페르니쿠스도 당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