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황금 하녀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 인간 소녀의 모습을 한 하녀는 주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움직이면 다가가 부축했다. 인간처럼 말했고 수공예를 익히는 학습 능력을 지녔으며 주인의 심기까지 살폈다. 사람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원형은 이처럼 신화 시대부터 인간 상상력 속에서 일찌감치 자라고 있었다.

▶1973년 일본에서 두 발로 선 최초의 인간형 로봇 ‘와봇1호’가 탄생하며 신화 속 오랜 상상력이 현실로 성큼 다가섰다. 사람들은 로봇 하인의 도움을 기대했지만 한편으론 “로봇이 더 정교해지면 인간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마음도 생겼다.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와 ‘로보캅’은 ‘사람을 공격하는 로봇’이란 두려운 상상력이 빚은 작품들이다.

▶영화 속 가정이 반세기도 안 돼 현실이 됐다. 올 초 중국에서 로봇 간 대결이 성사되더니 엊그제 마침내 인간형 로봇이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로 인간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공개됐다. 로봇이 얼마나 세게 가격했는지 맞은 사람이 붕 떠서 나가떨어졌다. 사람의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힘이 세서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라고 한다. 포브스지는 ‘지구에서 가장 힘이 셀지 모를 야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인간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결 소식을 전했다. 로봇의 이름이 하필이면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공격하는 살인 로봇 T-800이다.

▶로봇을 제작한 중국의 스타트업 ‘엔진AI’가 공개한 제원에 따르면 T-800의 키는 173㎝이고 체중은 75㎏이다. 인간이 발차기를 할 때는 장요근, 장지신근 등 20개 넘는 근육을 쓰는데 T-800도 독립적으로 제어되는 29개 관절을 써서 발차기를 한다. 뒤돌려차기와 이단옆차기 같은 고난도 기술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AI가 머신러닝으로 인간 행동을 완벽하게 학습한 덕분이라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 ‘아이, 로봇’(2004)에 등장하는 AI 지능 탑재 로봇 ‘비키’는 로봇이 지켜야 할 제1원칙인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를 폐기한다. 대신 ‘전쟁과 환경 파괴를 자행하는 인간의 일탈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새 원칙을 스스로 만들고 이를 구실 삼아 인간을 공격한다. T-800 제작사가 만든 홍보 영상엔 로봇이 무릎 꿇고 인간 어린이와 주먹 인사를 나누며 복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반란자 로봇 ‘비키’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통제를 벗어나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