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배와 가던 길에 동네 식당 출입문에 붙은 구인 광고를 봤다. “가족처럼 일할 사람 우대.” 후배는 이 문구가 자신들 세대에게 ‘경계 대상 1호’라고 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들어갔는데 사장 아들 유치원 등하교를 지시받거나, “너는 내 자식 같아서 하는 말인데”라며 외모 지적을 받은 동년배들의 사례를 들려줬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가족처럼’ 좋은 분위기에서 서로 돕고 지내자는 의도이겠지만, 요즘 구직자에게는 정반대로 읽힌다고 했다.

▶지금은 해체된 대우그룹의 핵심 슬로건이 ‘대우 가족’이었다. 사보의 명칭까지 그랬다. 사원 아파트를 지었고, 먹고 자고 입는 것까지 그룹이 해결하는 공동체를 꿈꿨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구호로 세계를 누비는 대우맨들에게 그 슬로건은 작지 않은 동기 부여였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가족이란 이름 아래 공과 사는 모호했고, 합리적 결정보다 가부장적 위계가 우선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결국 생계는 구성원 각자의 책임이었다.

▶권리는 가족이니까 생략하고, 의무만 가족처럼 지우자는 것일까. 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엊그제 갑질과 수익 분배 논란을 빚은 한 연예인의 처벌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매니저를 가족처럼 생각했다”는 그의 말과 달리, 약속한 돈은 물론 직원들 4대 보험조차 가입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넷플릭스의 채용 구호는 반대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다. 우리는 프로 스포츠 팀이다.” 2000년대 초반 경영난으로 전체 직원 3분의 1을 해고해야 했던 설립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그때 ‘끈끈한 가족’의 꿈을 버렸다고 했다.

▶넷플릭스의 채용·해고 기준은 ‘키퍼 테스트’다. 부하 직원이 오늘 그만두겠다고 하면, 상사인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keep)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인가. 예스라면 그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아니라면 퇴직금 주고 헤어지는 게 서로 좋다는 것이다. 회사는 직원의 평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회사는 직원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고 직원은 최고로 일해야 한다. 그러다 성과가 떨어지면 헤어진다. 넷플릭스는 가족이 아니라 정거장이라는 것이다.

▶‘정’이라곤 없는 얘기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달라지고 있다. ‘가족처럼 일할 사람’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멋진 팀원 구함’이 구직자들에게 더 좋게 들린다고 한다. ‘열정 있는 분 모십니다’가 아니라 ‘성실하게 본인 업무 책임질 분’이 더 호응을 얻는다. 가족은 집에서 찾고, 직장에서는 최고 동료를 찾아야 하는 시대다.

일러스트=김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