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유대인은 오랜 세월 차별의 대상이었지만 그중에도 대표적인 놀림거리가 그들의 굽은 코였다. 12세기부터 유대인의 코를 실제보다 더 크고 갈고리처럼 희화화한 그림이 등장했다. 과장된 코 그림에 유대인은 욕심 많고 사악하다는 비난을 담았다. 말로도 표현했다. 영어권에서 ‘갈고리 코(hook nose)’라 쓰면 유대인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된다.
▶몇 해 전 호주 출장 간 지인이 마트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4~5세로 보이는 아이가 자기를 보더니 ‘옐로 몽키(yellow monkey)’라 하더라는 것이다. 아이 부모가 조금 멋쩍어하는데 그들이 아이 앞에서 평소 어떤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더라고 했다. 미국인이 멕시코 출신 불법 이민자를 ‘젖은 등’(wet back)이라 부르는 것에도 멸시가 담겼다. 두 나라 국경에 놓인 강을 건너느라 몸이 물에 젖는 걸 조롱한 표현이다.
▶동양인의 작은 눈도 대표적인 놀림감이다. 동양인 고객의 주문을 받는 음식점 점원이 주문서에 ‘눈 찢어진 여자(lady chinky eyes)’라 쓴다. 학자들은 찢어진 틈새를 뜻하는 칭크(chink)가 차이나(China)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단어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를 띠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미국 땅에 대거 몰려온 중국인들에 일자리를 빼앗긴 미국인들 사이에 중국인을 향한 적대감이 퍼진 게 배경이란 분석도 있다.
▶핀란드 미인대회 올해 우승자가 중국인과 식사하고 소셜미디어에 눈을 찢는 모습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최근 반(反)이민 정서에 편승한 일부 정치인이 눈 찢기 사진을 찍어 가세했다. 분노한 아시아인들 사이에 핀란드 국적 항공사 불매 조짐이 일고 핀란드 TV와 일본의 합작 사업이 무산되는 등 파문이 일자 그제서야 핀란드 총리가 사과하고 나섰다. 눈 찢기 파문을 일으킨 여성은 ‘두통 때문에 관자놀이를 누른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미스 핀란드 왕관을 박탈당했다. 그녀의 행동에 가세한 정치인들에 대한 징계 절차도 시작됐다고 한다.
▶문명 사회라면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신체적 특징을 소재로 삼아 조롱하는 행위를 용납해선 안 된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등 각국 스포츠 리그는 인종 차별 표현을 한 관객의 경기장 출입을 금하고, 선수들에게는 출장 정지와 무거운 벌금을 부과한다. 그들의 눈 찢기 추태를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우리도 인종 혐오 표현을 예사로 하고 있고, 같은 동양권인 한·중·일도 혐오와 조롱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줘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