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술은 시름을 덜어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벗이다. 우리 조상들은 ‘모야 모야 잘도 논다/ 술 한잔에 흥이 난다’는 노동요를 부르며 고된 모심기를 견뎠다. 17세기 네덜란드 병사들은 술을 마시고 전투에 나섰다. 이후 전쟁터에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마시는 술을 ‘네덜란드의 용기(Dutch Courage)’라 부른다. 알코올이 주는 용기는 부작용도 부른다. 황제 앞에서 술에 취해 시를 읊던 당나라 시인 이백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내시에게 “내 신발을 벗기라”고 만용을 부렸다가 귀양을 떠났다. 오늘날 온갖 사건 사고의 이면에도 알코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뇌에서 지력은 전두엽이, 감성은 변연계가 담당한다. 그런데 뇌가 알코올에 중독되면 인간 뇌의 핵심인 이 두 곳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학습·판단·의사결정 등 고차원적 인지 능력이 손상된다. 사소한 분노를 참지 못해 공격적, 충동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성욕같은 1차원적 충동도 억제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인간다움을 잃는 것이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자신이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믿는 사고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며 “알코올 중독자의 기질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특이한 기질은 알코올 중독자가 음주 후 보이는 행태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마셨더라면 그럴 수 있다”며 “나는 집착성과 중독 성향이 강한 기질”이라고 인정했다.

▶중독 분야를 오래 연구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트럼프는 음주를 하지 않으면서도 알코올 중독자의 성격적 특성을 갖고 있는 특이한 사례라고 했다. 최근 아들 손에 목숨을 잃은 할리우드 유명 감독 부부를 조롱하는 걸 보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알코올 중독자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와일스 비서실장의 인터뷰를 보고도 화내지 않고 논리적으로 감싸는 것을 보면 냉철한 계산도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트럼프는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자신의 거칠고 저돌적인 협상 스타일이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황당한 허세를 부리고,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고,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조금 요구를 낮춰서 거래를 성사 시키는데 트럼프는 이를 ‘진실된 과장’ 수법이라고 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니지만 상대가 알코올 중독처럼 느끼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트럼프의 사고 방식과 행동 패턴을 알아가고 있다. 계속 통할지 지켜볼 문제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