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북한은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평양 어느 곳의 무덤에서 단군 뼈가 나왔다고 발표한 것이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5000년 전 유골이었고, 함께 발굴한 여성의 골반 뼈는 단군 부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한민족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고고학계가 요청한 발굴 데이터와 측정 방법은 공개를 거부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한국에선 ‘환단고기’가 논란이지만, 유사 역사학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핀란드는 1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야 독립했다. 가슴이 ‘웅장’해진 한 핀란드 작가가 모든 언어의 기원이 핀란드어이며, 이집트 문명도 핀란드 문명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서유럽 도시 대부분을 핀란드가 건설했다고도 했다.

▶환인이 창건하고 단군이 이은 ‘환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를 가로지른다고 한다. 민족적 자부심으로 가득찬 한국의 ‘환빠’들이 세계의 원류가 환국이라는 주장을 2000년대 중반 영어로 번역해 퍼 나르기 시작했다. 영미권 최대 커뮤니티인 ‘레딧’에 이 주장이 소개되자, “어, 핀란드도 비슷한 소리 하던데”라며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전 세계 역사를 자기 민족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두 원시 ‘초강대국’의 등장이었다. 세계 네티즌은 환국과 핀란드가 1만년 전 ‘환·핀 대전’을 벌였다는 스토리를 대량 생산했다. ‘Finno-Korean Hyperwar’를 검색하면 지금도 얘기가 쏟아진다.

▶나치 독일은 ‘조상 유산 연구협회’를 설립해 티베트와 남극까지 탐험대를 보내 아리아인의 기원을 찾았다. 미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몰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는 기원전 600년경 이스라엘에서 배를 타고 미국 대륙으로 건너온 고대 민족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미국 땅에 와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설파한다. 몰몬경은 이를 적은 기록이다.

▶유사역사학을 믿는 사람들은 학계의 실증적 반박을 ‘식민 사학’ ‘사대주의’ ‘열등주의’로 치부한다. 이러면 학문이 아니라 신앙이 된다. ‘환핀대전’에는 선사시대 공룡이 환국 편을 들었다가 멸종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핀란드인이 사교성을 잃은 것도 이 전쟁 후유증이라는 익살도 있다. 이런 얘기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 나올 소재는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