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고대 로마인들은 입냄새를 부끄럽게 여겼다. 굴 껍데기를 갈아 말 오줌에 개어 이를 닦았다. 냄새나는 입으로 대화하는 것을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자 야만으로 여겼다. 중세 초기만 해도 유럽에선 식탁 바닥에 침을 뱉거나 입과 손에 묻은 음식 기름을 식탁보에 닦는 것을 무례로 여기지 않았다. 식탁은 배만 채우면 그만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 들어서며 이 모든 것이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행위로 간주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냅킨이다.

▶유럽의 식탁 매너 발전사는 함께 밥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저서 ‘문명화 과정’에서 중세 이후 식사할 때 옷차림 변화를 주목했다. 밥을 먹을 때 모자를 벗고 단정하게 빗은 머리카락을 보여주는 게 예의로 자리잡게 된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오늘날 유럽 식당들이 까다로운 복장 규정을 발전시켜 온 데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 유럽과 미국의 고급 식당들은 지금도 청바지·반바지·운동화 차림이나, 이상한 글이 적힌 옷을 입고 입장할 수 없다.

▶몇 해 전 지인이 서울의 호텔 식당에 점퍼 차림으로 들어갔다가 출입을 제지당했다. 안내 직원이 “준비된 재킷을 빌려드리겠다”고 했지만 “밥 먹는데 옷이 무슨 상관이냐”며 불쾌해 했다. 그러자 직원이 “다른 손님들을 배려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 했다.

▶서울의 유명 백화점 식당가에서 각종 구호가 적힌 노조 조끼를 입고 식당에 들어가려던 이들을 백화점 안전요원이 제지했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다. 요원은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켜달라”며 벗어달라고 했다. 다른 손님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끼 입은 이들은 항의했고 백화점측도 별도 복장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사과했다.

▶한국은 자기 생각만 외칠 뿐, 그것이 타인에게 어떤 불편을 끼칠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사회다. 주말마다 광화문 대로의 절반을 막고 확성기를 트는 이들, 집회장 곳곳에서 술판을 벌이고 아무 데다 가래침을 뱉는 이들은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출입을 제지당한 노조원들이 항의한다며 식당에 입고 간 조끼엔 ‘해고는 살인이다’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식당을 찾은 다른 손님들은 불편할 수 있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적절한 때와 장소가 있다. 식당 내에선 조끼를 벗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백화점이 관련 규정을 손보겠다고 했다니 손님 간 배려를 명문화 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