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1978년 LA 샌타모니카에 자신이 들어가 살 집을 지어 공개했을 때 건축계는 충격에 빠졌다. ‘프랭크 게리 하우스’로 명명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짓고 있는 건지 부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주택 외벽에 값싼 함석판과 합판을 덧대면서 이미 사용한 적 있는 못을 써서 마감했다. 그마저도 못을 다 박지 않은 채로 방치해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인상을 일부러 줬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지었느냐?”며 의아해 하자 게리는 “나는 건물이 완성됐다는 느낌이 싫다”면서 “집은 완전하게 지을 필요가 없고 계획과 도면에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게리는 완성된 것보다 즉흥적인 것,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변화에 끌렸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에 매료된 것도 그런 성향에 기인한다. 유대인인 게리의 가족은 안식일에 잉어를 요리해 먹었는데 10대 시절 게리는 요리하기 전에 잉어를 풀어놓은 욕조에 들어가 놀곤 했다. 작품에도 이런 성향이 투영됐다. 물밖으로 힘차게 도약하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21m 크기 물고기 조형물로 유명한 일본 고베시 ‘피시 댄스 레스토랑’,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앞에 있는 물고기 조각 등이다.
▶티타늄을 휴지처럼 구겨서 건물 외벽을 꾸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빛의 반사에 따라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이는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 야외음악당, 빌딩의 중간 부분을 종이 상자처럼 손으로 움켜쥐어 쭈그러뜨린 형태의 체코 프라하 나쇼날레 네덜란드 빌딩 등에도 물고기의 역동성을 건축에 담고자 했던 게리의 의중이 녹아 있다. 한국에도 게리의 건축 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 있다. 2019년 서울 청담동 명품 거리에 등장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의 유리 지붕이다. 도포자락 흔드는 한국 무용의 우아하고도 역동적인 춤사위를 표현했다.
▶평생 ‘규칙의 파괴자’라는 말을 들었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5일 영면에 들었다. “건물이 건물처럼 보이는 것이면 그리스 신전조차 싫다”며 세상에 없던 건물을 탄생시켜온 그는 생전 자신의 작품을 ‘미지(未知)로의 도약’이라고 설명했다.
▶게리의 말대로 건축가는 도시에 이전에 없던 표정을 선사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 씨마크 호텔을 설계한 ‘백색의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는 서울과 강릉의 표정을 바꿔놓았다.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한강 노들섬에 공중정원을 짓는다는 소식도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게 건축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