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비서실장 임종석(1966년생)은 임명 때 51세였다. 70대 중반이던 박근혜 정부 김기춘(1939년생), 한광옥(1942년생) 비서실장 때와 비교해 대폭 젊어졌다. 공식석상에서 참모들은 그를 “실장님,임 실장”이라고 불렀지만, 사석에선 “종석이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이 많은 참모들은 술 몇 잔 들어가면 “종석이”라고 했다. 임 실장도 장관, 수석들을 형, 누나로 부르곤 했다.

▶민주당의 ‘형, 누나’ 호칭은 역사를 갖고 있다. 학생운동,시민단체,정당으로 20년 이상 이어진 관계에서 굳어진 것이다. 학생 때 굳어진 ‘형, 의장님’ 호칭은 평생 이어진다. 누군 국회의원에 장관이 되고, 누군 하위직에 그쳐도 사석에선 ‘형, 누나, 선배, 동생’이었다. 이를 본 어떤 기자가 민주당 의원에게 “선배”라고 불렀다가 “왜 내가 당신 선배냐”는 답을 들었다. 여기서 ‘형, 선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 사이에선 ’생활 공동체’란 말도 유행했다. 사회운동을 넘어 의식주(衣食住)도 함께하는 가족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2004년 민노당 의원과 보좌관 중에는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한 경우도 있었다. 보좌관들도 운동권 진영에선 한 가닥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의원이 집에서 밥, 빨래, 청소까지 시키자 ‘생활독립’을 선언했다. 의원은 “생활 공동체인데…”라며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 인간관계는 사무적이고 위아래 구분이 엄격하다. 초면부터 “형, 동생”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민주당에 비할 바는 아니다. 대부분 공식 호칭이나 존댓말을 사용하는 걸 편하게 여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이했다. 공적 관계라도 좀 친숙해지면 그때부터 말을 놨다. 김건희도 자신을 스토킹했던 좌파 유튜버와 통화에서 “그럼 동생이구나, 이젠 누나라 생각해달라”고 했다. 자신들을 “과거엔 진보였다”고 했는데, 적어도 호칭에선 국힘보다 민주당 정서에 가까웠던 것일까.

▶문진석 의원과 김남국 비서관이 “아우” “넵, 형님”이라고 하고, 김 비서관이 공직 상관과 동료인 강훈식 비서실장과 김현지 부속실장을 “훈식이형, 현지 누나”라고 한 문자가 포착됐다. 처음에는 이념으로 뭉쳤던 ‘이념 공동체’가 생계형 ‘이권 공동체’로 바뀐지 오래다. 이제 수시로 권력을 잡으니 형, 누나, 동생끼리 몇억 연봉 자리를 밀어주고 당겨준다. 태양광 등도 이들의 이권이란 얘기가 많다. 정치가 부업인 국힘은 정치가 생업인 민주당을 당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