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전에는 ‘버튼 눌렸다’라는 표현이 유행이었다. “쟤는 그 말만 하면 버튼이 눌려서 화를 내더라”의 그 버튼이다. 요즘은 그 말이 ‘긁혔다’ ‘긁었다’로 바뀌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발끈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사람의 멘탈을 뾰족한 것으로 문지르는 상상을 하면 말 뜻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거에도 쓰이던 말이지만 요즘엔 상대의 약점을 제대로 집어 공격한다는 뜻으로 느낌이 더 강해졌다. 인터넷에선 이를 줄여서 ‘긁’이라고 한다.

▶이 ‘긁’은 젊은 세대와 인터넷에서만 많이 사용됐지만, 최근 민주당 최민희 의원과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이 ‘긁’ 유행에 가세했다. 국감 기간 중 딸 결혼식으로 비판받은 최 의원은 “제가 긁혔습니다”라며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흘렸고, 김건희 여사 비판 후 윤 전 대통령 지지층에게 비난받은 배 의원은 “천박함을 천박하다 했는데 여기에 긁혀 발작하는 희한한 사람들이 있다”라고 썼다.

▶영미권에서 각광받은 올해의 신조어는 ‘분노 미끼’(Rage bait)다. 한 단어만 선정하는 옥스퍼드대 출판부의 2025년 올해의 단어이기도 하다. 분노·짜증·격분을 유발하도록 설계된 온라인의 미끼 콘텐츠를 뜻한다. 이 단어의 사용 빈도가 지난 1년 동안 세 배 늘었다고 한다. 온라인상 감정 조작과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가장 잘 포착했기 때문이라는 게 선정 이유다. 대중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긁’어 클릭을 유도하는 게 바로 ‘분노 미끼’ 콘텐츠다.

▶현대의 소셜미디어는 분노를 판다. 찬성하거나 옹호하는 글에는 ‘좋아요’만 누르고 말지만, 분노를 유발하는 글에는 반드시 댓글을 달고 공유하는 게 현대인이다. 정치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명품과 해외여행 콘텐츠, 사적 복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박탈감과 분노 지수를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올린다. 분노 감정이 조회 수와 댓글 수라는 화폐로 환전되는 현대 온라인 세상의 단면이다. ‘긁’으로 하는 돈벌이인 셈이다.

▶‘긁’을 잘하는 정치인은 강성 지지층에게서 인기를 얻고, ‘긁’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는 그렇게 수퍼챗(실시간 후원) 떼돈을 번다.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있을 지 몰라도 사회는 분열된다. 분노 미끼에 대처하는 자세 1번은 아예 미끼를 물지 않는 것이지만, 만약 물었다면 잠시 숨을 돌리고 짚어봐야 한다. 건강한 대안 없이 내 감정만 빼앗기는 소모적 콘텐츠는 아닌가. ‘긁’에 발끈하는 순간 말려든다. 긁히지 말아야 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