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한자 ‘책(冊)’은 대나무 조각에 글을 적어 끈으로 엮은 형상이다. 손자병법 등 중국 고대 기록 문화가 대나무 조각(죽간)에서 꽃피었다. 고대 이집트는 대나무 먼 친척뻘인 파피루스에 기록을 남겼다. 중국은 수·당 때부터 대나무 펄프로 종이를 만들었다. 중국의 대나무 사용은 6000년 전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간다.

▶공자를 받드는 유학자는 대나무를 ‘군자’의 모습으로 여겼다. 속이 비어 겸손, 곧게 자라 정직, 겨울에도 푸른 정절이라는 것이다. 중국 최초 시가집인 ‘시경’에도 대나무 관련 시(詩)가 수십 편이다. 대나무를 정원에 처음 심은 사람이 진시황이란 기록도 있다. 대나무[竹]가 부수인 한자는 200개를 넘는다. 당나라 이후 중국 그림의 대표적 소재였고, 송나라 소동파는 “고기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대나무 없이는 못 산다”고까지 했다. 대나무가 중국 정신 문화에 뿌리내렸다.

▶중국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800여 종이다. 지구 대나무 품종의 절반이다. 중국 대나무 숲이 세계 전체의 25%라는 자료도 있다. 온난하고 비가 잦은 중국 전역에서 쑥쑥 자란다. 중국은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었지만 자생 대나무가 없는 유럽은 가벼운 개암나무 등을 썼다. 대나무는 ‘볏과’에 속하는 풀이다. 하루에 1m 가까이 성장하기도 한다. 나무처럼 끝만 자라지 않고 모든 마디가 동시에 성장하는 데다 위로만 크기 때문이다. 대나무 뿌리는 땅속에 네트워크를 형성해 성장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죽순이 솟으면 그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낸다. 몇 년만 자라면 경제성이 생긴다.

▶대표적 경제성이 ‘대나무 비계’일 것이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부터 썼다고 한다. 중국 최고 그림이라는 송나라 ‘청명상하도’에도 등장한다. 대나무의 인장 강도는 강철에 근접하지만 무게는 훨씬 가볍다. 유연성도 좋다. 과거엔 대나무 껍질이나 황마 끈으로 대나무를 십(十)자로 연결해 비계를 만들었다. 지금은 인부가 허리에 찬 나일론 끈으로 대나무를 묶으며 비계를 올리는데 50층 이상 올라간다. 장인들도 있다고 한다. 밑에서 보면 아찔하다.

▶홍콩의 아파트 화재 참사로 300명 이상이 사망·실종 상태다. 대나무 비계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중국 본토는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다. 홍콩에선 자격증이 있어야 비계를 만들 수 있지만 화재는 막지 못했다. 중국은 대나무로 강철보다 강한 소재를 만드는 등 2035년까지 대나무 산업을 180조원 이상으로 키울 계획이다. 그래도 대나무 비계만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