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만 해도 김 한번 먹으려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만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돌았다. 비릿하고 뻣뻣한 김이 굽고 나면 맛이 마법처럼 바뀌었다. 생김을 한 톳 사다가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바르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린 뒤 프라이팬이나 석쇠에 올려 약한 연탄불로 앞 뒤 한 번씩 구우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신라 때부터 김을 먹었다’고 했을 만큼 김이 우리 식탁에 오른 역사는 길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는 ‘돌 위에 돋은 이끼를 따서 종이처럼 만들었다’고 돼 있다. 해태(海苔) 해의(海衣)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인조 때 전남 광양에 사는 김여익이 양식에 성공하면서 오늘처럼 김으로 불리게 됐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맛은 좋아도 위생은 포기한 식품이었다. 정조 임금이 “김의 틀을 잡을 때 사람 침으로 붙이지 말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서양에선 아예 음식으로 치지도 않았다. 17세기 제주에 난파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은 “조선에서 검은색 종이를 먹었다”고 표류기에 썼다. 김의 영어 명칭인 시위드(seaweed·해초) 자체가 음식이 아니란 뉘앙스다. 한국 김은 예부터 맛이 좋기로 알려졌지만 이런 이유로 시장 개척에 애를 먹었다. 1970년대 한국 수출 김의 90%를 일본이 사갔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일본·중국·태국 정도가 우리 시장이었다. 그때 김의 세계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한국의 김 수출액이 이달 20일 기준, 10억달러를 돌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0년 연간 수출액이 처음으로 1억달러를 넘어섰고 2017년에 5억달러도 넘었다. 해마다 7~8%씩 부지런히 성장한 결과다. 그 사이 우리 김은 미국과 유럽으로 시장을 넓혔다. 최대 수출국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고 수출 대상국도 120국을 넘어섰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김 수출 시장의 70%를 점유한 절대 강자다.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짠맛을 덜어내고 아몬드·카레·바비큐맛으로 현지화했다. 밥반찬으로는 승산이 없다 보고 과자로 만들었다. 감자칩 먹고 살찌는 걸 고민하던 미국인들이 고단백 저칼로리 김 스낵의 등장을 반겼다. 전자동 김 건조기가 개발되며 김을 빠르고 위생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케데헌’ 같은 한류 콘텐츠에 등장하는 김밥과 김 소비를 연계하는 마케팅도 펼친다. 김의 세계화 과정에 우연은 없었다. 한국 산업의 모든 분야가 땀 흘리며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김 10억불 수출’ 뉴스를 통해 또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