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국경선은 1400㎞로 서울~부산의 세 배 거리다. 북 주민이 철조망을 뚫고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넌다고 해도 중국 쪽은 대부분 사람 없는 오지다. 무턱대고 도강하면 빽빽한 숲을 헤매다 죽을 수도 있다. 탈북이나 밀수를 하려면 건너편에 중국 마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압록강 하류 단둥이나 두만강의 투먼·훈춘 등은 강이 넓고 깊어 건너는 것 자체가 어렵다. 공식 무역이 이뤄지는 곳이라 감시도 삼엄하다.

▶어느 해 겨울 북한 양강도 혜산이 마주 보이는 창바이(長白)를 가본 적이 있다. 강폭 20~30m 너머로 혜산이 손에 잡힐 듯했다. 꽁꽁 언 압록강 상류에서 북한 병사는 공을 차고 아낙네는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창바이는 ‘조선족 자치현’이다. 한국 말이 통한다. 1980년대까지 국경 통제가 없어 강을 자유롭게 건너 다녔다. 나이 많은 조선족은 “한 마을처럼 지냈다”고 했다.

▶1990년대 북에 ‘고난의 행군’이 닥쳤다. 혜산 주민들은 창바이의 친척과 친구들 덕분에 밀무역을 하기 쉬웠다. 밤에 손전등이나 라이터로 신호를 보내 접선했다. 지금은 북한 내부 5㎞까지 터지는 중국 휴대폰으로 연락한다. 트럭 타이어들을 묶어 널빤지를 올리면 쌀 5t까지 운반할 수 있는 ‘밀수 뗏목’이 된다. 오토바이는 장대에 바비큐처럼 꿰어 운반한 뒤 젖은 부품을 말린다. 얕은 여울목이나 한겨울 얼음길에는 트럭이 바로 강을 건넌다. 북 도로와 바로 연결도 된다.

▶혜산에는 북 노동력을 고용하는 중국 공장도 적지 않다. 인구가 20만명으로 양강도에서 가장 많은 데다 목재·구리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북 전역의 금붙이도 여기서 녹여져 중국으로 밀매된다. 이곳 장마당 6~7곳에는 거의 모든 생필품이 나와 있다. 한국 제품과 드라마가 북에 유입되는 주요 입구다. 강을 건너기도, 바깥 소식을 접하기도 쉽다 보니 탈북민도 많다. 혜산에선 탈북민 한 명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정은은 코로나 때 혜산을 완전 봉쇄하고 한류를 본 청년들을 총살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가 ‘혜산에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산 굴착기·트럭 등이 대거 들어와 북에서 희귀한 ‘주차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코로나 전후 김정은은 밀무역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이 문을 열어줘도 100% 통제가 안 되는 밀거래를 키우면 물건뿐 아니라 외부 정보와 한류까지 밀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우 막은 탈북도 다시 늘 수 있다. 지금 혜산을 보고 김정은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하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