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경주는 수학여행 성지였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와 대릉원을 돌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30~40명씩 같이 자던 콩나물시루 여관방과 청결을 의심케 하는 이불에 투덜거리면서도, 친구와의 우정과 해방감을 만끽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선생님 눈길을 피해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합창하며 천년 고도의 정기를 만끽하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다. 수학여행 자체가 줄기도 했고, 가더라도 해외인 경우가 많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경주는 역사가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 핫플레이스다. 보문단지 앞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드라켄은 ‘인생 롤러코스터’로 불린다. 63m를 올라가 5초 동안 정지한 뒤 90도로 곤두박질한다. 유례 드문 아찔한 수직 낙하. 캐치프레이즈는 “천년 고분(古墳)을 내려다보며 경험하는 최강의 스릴”이다.
▶1000년 전 통일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놀라운 도시였다. 신라 향가 권위자인 국어학자 양주동 선생은 ‘서울’이란 말도 ‘서라벌’에서 왔다고 했다. 서라벌→셔블→서울의 음운변화와 ‘새로운 땅’ ‘머리가 되는 땅’ 등의 의미를 제시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전성기 서라벌에 17만8936호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4인 가구로 계산하면 인구 70만, 당나라 수도 장안에 견줄 만한 수치다. “서른다섯 채의 금입택(金入宅·금을 입힌 집)” “탑이 기러기처럼 줄지어 있고 절은 별처럼 가득”이란 구절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방치된 경주를 재정비한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970년대 초 경주 관광 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강력히 추진했다. 단순히 문화재 보존을 넘어 국제적인 문화 관광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당시 재개발 지침의 일부다.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여유 우아의 감(感)이 살아날 수 있도록…”. 천마총과 안압지 등 주요 사적지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과 복원이 이뤄진 것도 이때였다.
▶APEC 회의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이 경주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돌아갔다. 경주가 한국의 고도를 넘어, 글로벌 역사 문화 관광 도시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트럼프에게 선물한 금관 원본이 전시된 경주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새벽 4시부터 줄을 섰다고 한다. 2000명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렸는데, 대기표 발급 자체가 개관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시진핑이 칭찬한 황남빵은 본점 대기 시간만 두 시간을 넘었다. 천년의 유산과 최신 트렌드가 결합하고 신구가 조화되는, 경주의 눈부신 재도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