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이 남긴 유물은 과거의 흔적이지만 후손의 현재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의 유적을 담고 있는 박물관도 민족의 흥망성쇠와 처지를 함께했다. 일제강점기엔 경복궁 귀퉁이에 총독부박물관이라는 초라한 이름으로 붙어 있었다. 한류가 세계를 휩쓰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은 한 해 500만명이 찾는 세계 5위권 박물관으로 발돋움했다. 뉴욕 메트, 영국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바티칸 박물관만이 우리 앞줄에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국립이집트박물관(EMC) 역사도 우리와 비슷했다. 1830년대 첫선을 보였지만 초라한 전시실 수준이었다. 1850년대엔 나일강 범람으로 많은 유물이 유실됐다. 아랍의 봄 시위 때는 약탈 피해도 입었다. 여러 해 전 EMC를 방문했던 회사 동료는 “전시 상태가 부실해 놀랐다”고 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황금 의자, 늑대의 머리를 한 아비누스상(像) 등 이집트 문명의 정수를 제외한 유물 대부분이 사실상 방치 상태로 놓여 있었다. 일부는 관람객이 만져도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안내문조차 없는 유물도 허다했다. 지난 9월엔 3000년 전 파라오의 금팔찌를 도난당했다.
▶옛 제국주의 국가들에 약탈당했던 유물을 돌려달라는 이집트 요구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은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로제타스톤’과 루브르박물관의 ‘덴데라 황도대’ 베를린 노이에스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을 ‘3대 약탈 문화재’로 꼽으며 반환을 요구해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돌려줘도 관리를 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를 대면 반박하기 어려웠다.
▶EMC를 대체할 이집트대박물관(GEM)이 지난 1일 피라미드가 군집해 있는 기자(GIZA)에 문을 열었다. 연면적이 축구장 70개에 해당하는 약 50만㎡로 세계 최대다. 고대 이집트 유물만 5만점이어서 단일 문명 박물관으로도 세계 1위다.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 유물 전시도 GEM 개관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고 한다. 당시 출토된 총 5400여 점 중 대다수가 창고에 방치됐다가 이번에 처음 햇빛을 보게 됐다.
▶GEM은 지난해 이미 일부 전시관을 시범 개관했다. 그런데 안내판이 아랍어와 영어, 일어로 돼 있다고 한다. 이집트가 자랑하는 유물인 ‘태양의 배’ 복원과 전시실 조성 비용을 일본이 후원한 데 따른 감사 표시라고 한다. 세계 각국이 문화를 국가 경쟁력을 높일 무기로 쓰고 있다. 우리가 한류의 성공에 들떠 있는 사이 이웃 나라는 이집트의 새 박물관에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문화 경쟁이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