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쥘 베른의 1870년 소설 ‘해저 2만리’에는 최신예 잠수함 노틸러스호(Nautilus)가 등장한다. ‘네모’ 선장이 만든 노틸러스호는 최고 시속 43노트(약 80㎞)로 심해를 종횡무진했다. 자체 생산되는 무한한 전기로 무한 잠항이 가능했다. 네모 선장은 노틸러스호로 문명 사회에 대한 복수를 실행했다. 노틸러스는 그리스어로 ‘항해자’라는 뜻이다.

▶1945년 미국이 최초로 핵무기를 만든 이후 강대국들은 핵무기 보유 경쟁을 시작했다. 문제는 핵무기를 적국까지 실어 나르는 방법이었다. 폭격기는 대공 미사일과 제트 전투기의 등장으로 격추당할 위험이 컸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등장했지만 선제공격을 당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모두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었다. 바다 밑에 몇 달이고 숨어 있다 핵미사일을 쏘자는 것이었다. 미 ‘원자력 해군의 아버지’ 하이먼 리코버 제독이 개발을 주도했다.

▶미국은 세계 최초 원잠의 이름을 USS 노틸러스로 붙였다. 1958년 8월 3일 노틸러스가 잠항으로 북극점을 통과했다. 함장 윌리엄 앤더슨 중령은 “세계, 조국, 그리고 해군을 위해. 북극점이다!”를 외쳤다. 미 해군은 USS 노틸러스가 알래스카에서 그린란드까지 2945㎞를 횡단하는 동안 소련은 전혀 몰랐다고 평가했다. ‘해저 2만리’의 무한 잠항 꿈을 실현해준 건 잠수함에 탑재된 소형 원자로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공기를 이용해 발전하는 디젤 잠수함은 고작 하루이틀 잠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잠의 원자로는 공기 없이 전기를 무한 생산한다. 문제는 전기가 아니라 승조원이 먹을 식량이 됐다.

▶원잠 기술은 급격히 진화했다. 1959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한 최초의 전략핵잠수함(SSBN) USS 조지워싱턴이 취역했다. 이듬해 수중에서 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함장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심해로부터 목표까지. 완벽’이라는 메시지로 보고했다. 구소련도 미국에 뒤지지 않으려고 원잠 개발에 몰두했다. 1981년 건조된 타이푼급 원잠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길이 175m로 배수량은 4만t을 넘는 괴물이었다. 핵탄두 200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한국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한 1993년 이후 원잠 사업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러시아 원잠 기술을 입수했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원잠을 만들려 했다가 중단됐다. 미국 때문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30일 한국의 원잠 건조를 허가했다. 갑자기 트럼프가 멋지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