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에서 황금은 권력을 상징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이아손은 “후계자가 되고 싶으면 황금 양피(羊皮)를 가져오라”는 왕의 지시에 원정대를 조직해 보물찾기에 나선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화려한 금박으로 꾸미고 촛불을 켜면 방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게 했다.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에 있던 코리칸차는 사방 벽을 금판지로 뒤덮은 황금 사원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황금 사랑도 유별나다. 뉴욕 트럼프타워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와 그가 소유한 마러라고 리조트 사무실 천장·벽·액자 등이 모두 금빛이다. 백악관 집무실에 걸린 전임 대통령들 초상에 금빛 테두리를 둘렀고 신축 중인 영빈관 샹들리에와 집기까지 온통 금빛이다. 백악관이 아니라 금악관(Golden House)이란 말까지 돈다. 자신이 내놓는 정책에도 금 수식어를 즐겨 쓴다. 중국 견제용 신형 함대도 ‘골든 플리트(황금 함대)’로 명명했다.
▶아시아를 순방 중인 트럼프에게 금 선물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전 총리는 금장 골프채, 이시바 전 총리는 백금으로 도금한 사무라이 투구, 이번 다카이치 총리는 금박 골프공을 선물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금색 호출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왕실도 사랑한다. 영국 왕실만 두 번 국빈 방문했다. 올해 방문 때 황금 마차를 타고 윈저성에 들어가 왕실 만찬을 대접받고 “영국은 왕실을 가질 만큼 아주 운 좋은 나라”라고 했다. 일본 왕실 방문도 그에겐 각별했다. 천황에게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독재 국가들이 하는 열병식도 부러워했다. 미군은 잘 하지 않는 열병식을 끝내 열게 만들고 마침 자신의 생일이었던 그날 스스로 주인공이 됐다.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속내는 다를 것이다. 기자들이 3선 도전 여부를 묻자 트럼프는 “나는 그것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답했다. 그는 푸틴, 김정은 등 임기 없는 독재자들과 친분도 자랑한다. 미국에서 반트럼프 시위는 ‘노 킹(No King)’이 핵심 구호다.
▶트럼프의 금 사랑과 왕실 사랑을 모두 고려한 선물을 우리 정부가 준비했다. 29일 방한한 트럼프에게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는 신라 금관을 쓴 트럼프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 금관 모형 선물이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트럼프가 “정말 특별하다. 감사하다”고 한 걸 보면 선물에 매우 만족했을 것으로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