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올 3월 미얀마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태국 방콕에서 건설 중이던 감사원 신청사 붕괴 영상이 화제가 됐다. 진앙에서 900㎞나 떨어진 곳이었지만 철골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주저앉으며 사라졌다. 지반을 타고 전해진 미세한 진동이 부실 설계 건물의 구조를 흔든 결과였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건축은 중력과 진동 사이의 아슬아슬한 협상이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무게 자체가 가장 큰 적이 된다. 층이 쌓일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하중을 버티려면 철골 구조가 지하 암반에 뿌리내려야 한다. 롯데월드타워(555m)는 서울 잠실 지하 30m 암반에 박힌 108개의 쇠말뚝으로 버틴다. 말뚝 하나가 5000t 이상 하중을 견디며 건물 전체의 무게를 땅속으로 분산시킨다.

▶초고층일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외벽을 스치며 생기는 소용돌이(와류)가 진동을 일으킨다. 강풍이 불면 꼭대기는 1~2m까지 좌우로 움직인다. 흔들림을 줄이려 대만 ‘타이베이 101′(508m) 상층부에는 ‘매스 댐퍼(mass damper)’라는 무게 660t 추가 매달려 있다.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면 추가 반대쪽으로 움직이며 진동을 완화한다. 현존 세계 최고층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828m)가 층마다 형태를 달리한 Y자형 꽃잎 구조로 설계된 이유도 바람을 흩어내기 위해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최고층 기록을 세우겠다며 678층짜리 ‘라이즈 타워’ 건설 계획을 내놨다. 높이가 2㎞다. 사우디에 짓고 있는 ‘제다 타워’(1㎞)보다 까마득하게 높다. 2030년 완공 목표로 7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성공하면 과학 역사에 남을 도전이다. 고도 2㎞에서는 공기 밀도가 지상보다 약 20% 낮아지고, 바람은 더 거세진다. 건물에 가하는 압력이 유리와 철골로 전달되면 그 자체가 건물에 막대한 물리적 부하가 된다.

▶이 높이의 하중을 견디려면 일반 콘크리트보다 훨씬 강한 초고강도 복합 콘크리트가 필요하다. 꼭대기와 1층의 기온은 15도 안팎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철근과 유리가 온도 변화로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면 미세한 균열이 누적될 위험이 있다. ‘얼마나 높이 올릴 수 있느냐’보다 ‘어디까지 무너지지 않게 세울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라이즈 타워가 중력, 바람, 진동, 온도 등 자연의 물리 법칙 한계에 도전하는 ‘수직 실험실’로 주목받는 이유다. 이 꿈이 중동 사막 위의 신기루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끊임없는 마천루 도전을 현대판 바벨탑으로 보는 불안감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