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한국은행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중수 당시 총재의 금 투자 실패가 의원들의 공격 대상에 올랐다. 2010년 취임한 김 총재는 2011년부터 3년간 금 90t을 매입했다. 역대 한은 총재들이 손실 위험 때문에 금 투자를 꺼린 것과 달리 김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자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기 위해 금을 샀다.
▶문제는 금값 하락이었다. 국제 금값은 2011년 9월 트로이온스(약 31.1g)당 1900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국정감사 때는 128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한은의 평균 매입 가격이 1628달러였으니 수익률이 마이너스 20%를 넘었다. 여야 의원들은 김 총재를 맹공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은 “금값도 하나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총재”라고 했고,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은 “대규모 평가 손실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질타했다.
▶그 국정감사는 한은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후 금 투자를 중단했고, 당시 금 매입에 관여했던 직원 상당수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4t으로, 베네수엘라(161.2t)보다 낮은 세계 36위다. 외환 보유액(4220억달러)은 세계 10위인데, 유독 금 보유량은 적은 것이다. 그나마 현재 보유량 대부분이 김 총재 때 사둔 것이다.
▶2015년 말 106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 금값이 최근 4300달러를 뚫을 정도로 초강세를 보이면서 이탈리아의 뚝심 있는 금 보유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2452t으로 미국(8133t)과 독일(3351t)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한다. 현재 시세로 3400억달러(약 485조원)다. 이탈리아 금 보유량은 2차 대전 후 20t까지 줄었지만, 전후 경제성장으로 유입된 달러의 일부를 꾸준히 금에 투자해 보유량을 늘렸다.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로 모은 금을 팔았던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2010년대 국가 부도 위기 때도 금은 팔지 않았다.
▶금값 급등으로 ‘미운 오리 새끼’였던 한은의 금도 재평가받고 있다. 수익률은 164%로 껑충 뛰었고, 평가액도 146억달러를 넘는다. 12년 전과는 정반대로 올해 국감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한은이 금을 사지 않은 것은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것” “금 시장에 적극 대응했다면 외환 보유액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며 금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국회의원은 참 편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