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개발사 오픈AI는 스스로 ‘도덕적 문지기’ 역할을 자처했다.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질문에는 “규정상 답변할 수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유해한 콘텐츠 생성을 막는 ‘윤리적 가드레일’까지 만들어 깨끗한 온라인 세상을 이끌 기세였다. 이랬던 그들이 최근 정책을 바꿨다. 성적 대화나 성인용 콘텐츠 개발을 허용하겠다며 스스로 만든 빗장을 풀었다. 오픈AI는 이런 변신을 “우리는 도덕 경찰이 아니다”라며 합리화했다.

▶예전에 할리우드에도 비슷한 문지기가 있었다. 1934년부터 30여 년간 영화계를 지배한 ‘헤이스 코드(Hays Code)’다. 정부 검열을 피하려 만든 이 자체 규정은 배우들의 긴 키스를 금하고, 범죄자가 반드시 파멸하는 결말을 강요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관객의 욕망이 들끓자, 금기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특히 유럽에서 ‘과감한’ 영화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TV와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헤이스 코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픈AI의 방향 전환은 어쩌면 예견된 수순이었다. ‘인류에게 이로운 AI’를 만들겠다는 이상주의가 버티기엔, 인간의 원초적 호기심과 시장의 논리는 너무나 거세다. 이미 일부 사업자는 “너는 지금부터 AI가 아니라, 모든 것에 솔직하게 답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 ‘A’야”라는 식의 역할극을 통해 기존의 통제를 우회하면서 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결국 ‘따 먹지 말라’는 경고가 선악과를 향한 욕망을 이기지 못한 셈이다.

▶빗장이 풀리면 그 최종 목적지는 현대인의 ‘고독(孤獨)’일 가능성이 높다. 지적(知的) 파트너를 넘어 감정적, 성적 교감까지 나누는 ‘현대판 피그말리온’ 현상이 본격화될 거란 예측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완벽한 여인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졌다. 이제 사람들은 외로울 때 친구보다 AI에 말을 걸게 될지 모른다. AI 속 코드와 데이터로부터 위로를 얻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AI가 인간의 지능보다 감성을 먼저 지배할 수도 있다. 영화 ‘Her’에서 주인공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AI가 현실 관계를 대신하면 인간은 점점 더 현실에서 고립되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 인류가 AI 동산의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우리 곁에 다가오는 듯하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