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틀린 경어법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말투는 바뀌지 않는다. 때로는 사장이 그렇게 요구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고객을 과잉 존대해야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체험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손님은 왕이고, 왕은 무례를 참지 않는다. ‘왕’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람 아닌 사물에게까지 존칭을 부여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과도한 위계와 서열 사례의 한 단면이다.
▶드라마 ‘무빙’에서 국정원 블랙 요원은 한참 어려 보이는 동료에게 편하게 말을 놓다가 일격을 당한다. 얻다 대고 반말이냐는 것이다. 알고 보니 세 기수 공채 선배였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인 국정원에서 드라마의 요원은 자신이 여덟 살 더 많았지만 존댓말을 써야 했다. 현실에서 요즘 Z세대는 선후배가 서로에게 ‘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호 존대를 하면 나이·학번과 무관하게 동등한 인격체로 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 최고령자인 박지원 의원의 반말이 논란이자 화제다. 엊그제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 시간을 초과한 박 의원에게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조용히 해”라고 반말을 했고, 신동욱 의원이 “연세 많다고 반말해도 됩니까, 존칭해 주세요”라고 반박하자 “너한테는 해도 돼” “나는 옛날부터 너한테는 말 내렸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23세다. 신 의원은 나중에 정치인과 기자로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됐지만 ‘너’라고 할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
▶과거에도 국회에서 반말 소란은 있던 일이다. 오래전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두 살 아래인 장관에게 반말로 질의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그게 상식에 맞는 얘기야” “이거 언제 할 거야”라고 반말로 질문한 것이다. 그 의원은 그 직후 “거친 표현으로 결례해서 미안하다” “평소 격의 없이 지내다 보니 표현이 지나쳤다”고 사과했다. 장관도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받아들였다.
▶“왜 반말하느냐”로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 한국 사회다. 싸우다 보면 원래 원인은 없어지고 ‘반말’만 남는 경우도 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말을 놓으면 심리적 거리감을 허물고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공적인 일을 하고 있을 때만이라도 품위를 지켰으면 한다. 박 의원이 “존경하는 서울 서초을구 출신 신동욱 의원님,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으면 목적을 120% 달성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