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힘 버튼 연타’라는 제목의 짧은 동영상이 요즘 자주 눈에 띈다. 대한민국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라는 부연 설명도 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문을 닫으려는 한국인의 바쁜 손가락에 대한 풍자다. 그런데도 타인이 입장하면 벽면만 응시하거나 자신의 휴대폰 액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불필요한 관계, 어색한 30초를 차단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현대인의 고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박지영의 단편 중에 ‘이달의 이웃비’가 있다. 이웃으로 남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란 뜻이다. 단순히 아파트 관리비나 공동 경비가 아니라, 불편을 끼치지 않는 대가로 지불하는 심리적·물질적 비용이다. 가령 층간 소음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바닥에 고가의 매트를 까는 것도 한 예다. 지난 5년 동안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32만건을 훌쩍 넘었다.
▶추석 연휴 기간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아파트 현관에 붙인 친필 쪽지였는데, “앞집 문 여는 소리나 인기척이 들리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달라. 서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있지도 않은 룰 혼자 만들어 강요하지 말라”는 댓글도 많았지만, “공감 간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최근엔 ‘이웃과 부대끼며 살던 예전 풍경이 훨씬 보기 좋다’는 대답이 38%로 줄었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5년 전에는 45%였다. 이웃과 마주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이웃포비아’라는 말도 등장했다.
▶여전히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주인공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을 날을 기다린다. 창밖의 담쟁이 덩굴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 믿는다. 폭풍우 거센 밤, 아무도 모르게 마지막 잎새를 그려서 삶의 의지를 되찾게 해준 사람은 생면부지의 아래층 늙은 화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웃이지만, 존시의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한국의 주거 문화는 사생활 보호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지 오래다. 개발도상국 시절 이웃사촌이 담당하던 돌봄·안전 감시·상호 부조 등의 기능은 경찰·소방·사회복지 서비스 등 제도화된 공식 안전망이 맡았다. 이웃에게 의존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아무리 층간 소음이나 주차 갈등 등 갈등이 많다지만 ‘이웃포비아’는 선을 넘은 것 같다. ‘마지막 잎새’의 희생까지는 어렵더라도, 엘리베이터에서 간단한 인사 정도는 서로 편히 나누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