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예능 대통령’ 시대를 연 인물로 꼽힌다. 대선 후보였던 1992년 토크쇼에 출연해 수준급의 색소폰 연주 개인기를 선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기’까지 했다. 예능에 나와 대통령 일상을 소개했는데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 앞에 서서 연설 연습을 하거나 선글라스를 썼다 벗었다 하며 표정 연기를 곁들여 지지층을 사로잡았다.

▶한국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인 예능 시대를 열었다. 야당 총재이던 1997년 예능에 출연해 “나는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 아니라 본부남(본래 부드러운 남자)”이란 말로 강성 이미지를 벗겨냈다. 그 후 대망을 품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예능 문을 두드렸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예능에 출연했다.

▶현직 대통령의 예능 출연 첫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취임 첫해이던 2003년 ‘느낌표’에 나와 청소년용 책을 권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면 예능 출연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예능 출연을 추진했다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시끄러웠던 여론을 감안해 포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예능 출연은 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추석 연휴 기간 방송 출연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 시스템이 마비된 상태에서 출연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지적과, “대통령이 K푸드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위해 출연한 것”이란 옹호로 연휴 내내 시끄러웠다. 야당 비판에 대통령실이 “허위 사실 유포”라고 거칠게 반박하며 논란을 더욱 키웠다. 이 대통령은 예능 출연의 효과를 누린 대표적 정치인이다. 성남시장이던 2017년 ‘동상이몽’에 11회 고정 멤버로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2021년 대선 전엔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예능 출연이 좋은 효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2021년 예능에서 ‘계란말이를 해주는 남편’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었다. 그러나 당선인 신분으로 나온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취임 첫해 출연한 ‘TV동물농장’에선 “예능까지 정치에 이용하느냐”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쇠고기는 어디 있어?(Where’s the beef?)’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햄버거에서 중요한 것은 빵보다 쇠고기’라는 뜻에서 파생돼 ‘본질적인 과제를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국정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예능 출연도 빛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