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의 소설 ‘종이 동물원’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중국계 어머니가 종이로 호랑이를 접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종이로 호랑이·늑대 같은 동물 형상을 만드는 건 중국의 오랜 풍습이다. ‘종이호랑이(纸老虎)’란 단어는 명나라 소설 ‘수호전’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실제 힘은 약하다는 뜻이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와 실권자 리훙장도 저물어가는 제국을 한탄하며 이 말을 썼다.
▶‘종이호랑이’를 서방에 알린 건 마오쩌둥이다. 마오는 1946년 근거지 옌안에서 미국 기자를 만나 “미국 등 제국주의와 반동파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국·공 내전에서 미국이 국민당을 돕고 있지만 인민 지지를 받는 공산당이 결국 이길 것이란 뜻이었다. 당시 통역은 ‘종이호랑이’를 미국 기자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유사한 관용어인 ‘허수아비(scarecrow)’로 번역했다. 그런데 마오는 “내가 말한 건 종이(paper)로 만든 호랑이(tiger)였다”고 했다. 마오의 ‘종이호랑이’ 인터뷰가 전 세계로 퍼졌다.
▶냉전 시기 ‘종이호랑이’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서로 깎아내릴 때 자주 등장했다. 미 언론은 소련 핵무기가 위협적이지만 군비가 큰 부담이고 경제 구조가 취약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했을 땐 공산권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최근엔 이름난 다국적 기업이지만 재무 구조가 부실한 경우에도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는다.
▶얼마 전 트럼프가 “러시아가 군사 강국이라면 (우크라이나 침략은) 일주일도 안 걸렸을 전쟁”이라며 “종이호랑이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초반 예상과 달리 3년 반을 넘기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자신의 종전(終戰) 안을 수용하지 않자 깔아뭉개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푸틴이 2일 “이 종이호랑이를 상대해 보라”고 응수했다. 지금 러시아가 미국 주도 나토(NATO)와 우크라이나에서 대결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종이호랑이라면 (막지 못하는) 나토는 뭐냐”고도 했다. 나토야말로 진짜 ‘종이호랑이’라는 야유다.
▶푸틴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순항 미사일을 제공하면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확전을 의미한다”고 했다. 러시아 본토가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서방을 공격하겠다는 겁박이다.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선 이미 6만명이 희생됐고 대만해협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종이호랑이’ 말싸움이 실전으로 번질까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