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축구 황제’ 펠레가 ‘2000년이 되기 전에 아프리카 국가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란 예측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다른 예언들과 마찬가지로 빗나간 예측이 됐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올림픽에선 두 차례(1996 나이지리아, 2000 카메룬) 우승했지만 월드컵에선 2022년 모로코 4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다.
▶그래도 아프리카 축구는 무섭게 성장했다. 2018 월드컵 우승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23명 중 15명이 카메룬, 알제리, 기니, 말리 등 아프리카계였다. 거의 모든 유럽 명문 클럽에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있다. 아프리카 각국 대표팀 또한 상당수 선수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했다. 월드컵 4강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 대표팀 선수 26명 중 14명이 이민자 출신이었다. 유럽의 선진적인 육성 시스템 속에서 훈련받은 이민·난민 가정 2세들이 다시 고국의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다.
▶2022 월드컵에선 이전 월드컵과 달리 유럽 출신 유명 백인 감독이 아프리카 팀을 지휘하는 풍경이 사라졌다. 당시 본선에 진출한 아프리카 5국 감독 전원이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자국 출신으로 채워졌다. 아프리카 선수의 속성과 팀의 문화를 잘 아는 자국 출신 감독들이 코칭 패러다임도 바꾸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축구의 영향력과 인기는 대단하다. 2005년 코트디부아르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디디에 드로그바가 TV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는 힘을 합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며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추자”고 호소하자, 정부군과 반군으로 갈라져 싸우던 코트디부아르 전역에서 일주일 동안 총성이 멈췄고 1년여 뒤 내전은 막을 내렸다. 2023년부터 내전에 시달려온 수단은 국내 축구는 중단됐지만 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다. 안전 문제로 홈경기는 리비아에서 치르고, 훈련 캠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차렸다. 수단축구협회 관계자는 “나라 전체가 갈라졌지만, 대표팀이 경기하는 90분 동안은 그 모든 것을 제쳐둔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대서양의 인구 52만명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남은 예선 2경기 중 1승만 거두면 역대 월드컵 참가국 중 인구 기준 둘째로 작은 나라가 된다. 국토 면적은 강원도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축구 리그는 무려 11개가 있다고 한다. 작은 섬나라가 기적을 끝까지 써나가길 기대한다.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