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넘기다 손가락이 스쳤을 뿐인데 쇼핑 앱이 번쩍 열린다. 분명 ‘닫기’를 눌렀는데 엉뚱한 광고 페이지로 강제 이동된다. 이런 황당한 경험을 안 당해 본 사람이 드물다. 누군가 스마트폰 안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 멱살을 잡은 듯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해서 ‘디지털 멱살잡이’ ‘납치 광고’라 부른다. 이 교묘한 기술은 100년에 걸쳐 진화해 온 상술의 결정판이다.
▶시작은 1920년대 미국의 한 광고 전문가의 아이디어였다. ‘이달의 책 클럽’은 가입만 하면 신간을 거의 공짜로 보내줬다. 매달 ‘추천 도서 소식지’도 함께 발송했는데, ‘거부 엽서’를 보내지 않으면 추천 도서를 보내고 돈을 받았다. 소비자의 관성과 건망증을 파고든 ‘네거티브 옵션’의 탄생이다. 오늘날 ‘무료 체험 후 자동 결제’의 할아버지뻘이다.
▶멱살잡이 기술은 숙주를 바꿔가며 진화했다. 2000년대 초반 PC 화면을 무법천지처럼 뒤덮던 ‘팝업 광고’가 1세대라면, 스마트폰 시대의 2세대는 훨씬 지능적이다. ‘해지’ 버튼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어렵게 하고, ‘결제’ 버튼은 활주로처럼 넓혀두는 ‘다크 패턴’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이용자도 모르게 앱을 강제 실행시키는 악성 코드까지 등장했다. 100년 된 수법이 데이터 과학자와 만나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하며 쉬지 않고 인간의 심리적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창이 강해지면 방패도 튼튼해지는 법이다. 해외에선 ‘디지털 멱살잡이’에 일찌감치 철퇴를 내리고 있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 프라임’의 미로 같은 해지 절차, 즉 ‘못 나가게 하는 멱살잡이’에 대해 소송을 걸어 최근 3조5000억원에 합의했다. 앞서 게임 ‘포트나이트’도 교묘한 결제 유도를 하다 7000억원대 합의금을 물었다. 유럽연합(EU)은 아예 ‘디지털서비스법’이라는 강력한 규제를 만들어 매출의 6%까지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국내에선 공정위와 방통위가 뒤늦게 조사한다고 하지만 이미 수많은 소비자가 불편과 피해를 겪고 있다. 1일 쿠팡은 파트너사 10여곳을 상대로 ‘납치 광고’를 이용해 강제로 쿠팡 사이트로 이동시키게 했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그간 ‘납치’의 최종 목적지였던 쿠팡이 갑자기 ‘피해자’를 자처하며 칼을 빼들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인가, 적반하장(賊反荷杖)인가 논란도 일고 있다. 어쨌든 우리도 ‘디지털 멱살잡이’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새 수법이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