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제작에는 8세기 통일신라의 첨단 금속공학과 음향학이 총동원됐다. 18t 넘는 구리와 주석을 섞어 섭씨 1000도 고온에 녹여 만든 종이 1200여 년 지난 지금도 아름다운 소리로 세상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그 품질을 현대에 만든 종이 따라가지 못한 일화도 있다. 제야의 종 타종 때 쓰던 옛 보신각종은 세조 때 만들어졌지만 노후화로 1985년 타종이 중단됐다. 대신 그 자리에 성덕대왕신종을 본뜬 모조 보신각종이 설치됐다. 그런데 막상 쳐보니 소리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한 한국 범종은 중국·일본 종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종을 매다는 용 모양의 고리인 용뉴(龍鈕)만 해도 우리 것은 용 한 마리가 종의 무게를 감당하지만 중국과 일본 용뉴는 두 마리 용이 종의 무게를 버틴다. 우리 종은 연꽃무늬로 장식한 당좌(撞座)를 당목(撞木)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가장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지점에 당좌를 새긴다. 중국 종엔 이 당좌가 없고, 일본 종에는 있지만 꽃무늬가 단순하다.
▶종을 칠 때 내부에서 발생하는 여러 주파수 중 고주파 잡음을 빠르게 외부로 배출하는 종 상부의 관을 음통(音筒)이라 하는데 이것도 우리 종에만 있다. 성덕대왕신종은 용뉴가 이 음통을 감싸고 마치 승천하듯 몸을 비튼 자태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는 단일한 톤이 아니라 여러 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복합음이다. 처음 종을 칠 때의 타격음이 사라지면 이후 64㎐의 깊고 은은한 저음과 168㎐의 높은음이 만나며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소리를 만든다. 이 소리가 3초 주기로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며 1분 이상 이어지는데 이를 맥놀이라 한다. 그 소리가 하도 아름답고 애절해 어린 아기를 제물로 썼다는 인신 공양 설화까지 만들어졌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4일 에밀레종 소리가 다시 울렸다. 종소리의 상태와 내부 구조 변화 등을 확인하기 위해 총 12번 종을 쳤는데 공개 타종 행사는 2003년 이후 22년 만이다. 가장 최근은 2022년 타종이었지만 그때는 비공개였다. 박물관은 이 자리에서 종을 별도로 보관·전시하는 신종관 건립 계획도 밝혔다.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용뉴를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내려놓고 전시한다. 대신 매달았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종의 윗부분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중단됐던 정기 타종 행사를 재개할 계획도 있다니 천상의 종소리를 다시 들을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