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광 사이에 떠도는 말이 있다. “세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 제공자로 영국을 찍으면 대충 맞는다.” 세계적으로 복잡하고 골치 아픈 난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전성기 대영제국 시절 영국은 5대양 6대주의 모든 문명권에 영향력을 미쳤다. 전 세계 육지의 4분의 1, 인구의 6분의 1이 영국 영향권이었다. 워낙 넓은 식민지를 경영하다 보니 그 지역의 역사·문화적 맥락과 어긋난 통치도 빈번했다.
▶그 때문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수단 내전이다. 영국은 인종·종교가 다른 남·북부를 한 나라로 묶어 통치했다. 1955년 남북 내전이 발발했는데 이를 수습하지 않은 채 수단을 독립시켰다. 내전이 계속돼 남수단에서만 250만명 이상이 숨졌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방글라데시에서 살던 로힝야족을 영국이 미얀마로 이주시켜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겼는데, 미얀마 독립 이후 학살·추방당했다. 인도·파키스탄 갈등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영국이 민족·종교 갈등을 부추기는 식민 통치를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에도 영국이 껴 있다.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 기근이 발생했지만, 아일랜드산 곡물을 영국에 수출했다. 100만명이 아사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이민을 갔다. 850만명이던 아일랜드 인구는 아직도 500만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 청나라와는 마약류인 ‘아편’ 수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였다.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조선에도 영국의 손길이 뻗친 적이 있다. 1885년 거문도 점령 사건이다. 영국은 2년간 거문도를 요새화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러시아의 조선 진출 견제가 목적이었다. 중동과 아시아 지역 패권을 두고 영국이 러시아와 벌인 ‘그레이트 게임’의 한 끄트머리에 조선이 낀 것이다. 영국이 조선의 운명을 다르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영국이 유엔 총회를 이틀 앞둔 21일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다. 영국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유대인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2년 전 아랍 민족에겐 그 땅에 독립국을 세워주겠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상충된 약속을 해 갈등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중동 평화를 위한 108년 만의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이 영국의 원죄를 씻어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