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1970년대, 토요일 오전이나 장학사 방문 같은 행사가 있으면 학생 전원이 대청소를 했다. 일반 청소와 대청소를 구분하는 기준은 나무 복도 왁스 칠이었다. 왁스를 발라 걸레질 오래 하면 광이 났다. 왁스를 많이 바른다고 광이 나는 게 아니라 나무의 결을 따라 섬세하게 해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깨끗해진 교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대청소와 다시 만난 건 군대였는데, 군사령관 방문을 앞두고 대청소 비상이 걸렸다. 변기를 닦을 때 치약까지 사용했는데 냄새도 사라지고 왁스를 바른 것처럼 빛이 났다.

▶어릴 때 기억으론 마을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대청소를 함께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신작로 쓸러 가자”고 했다. 마을마다 자동차 도로인 신작로가 생기던 시절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마을 대청소가 등장했다고 한다. 새마을운동 시기엔 전국적 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 노래에는 ‘초가집도 없애고/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주택과 도로 개량엔 필수적으로 청소가 따라왔다. 마을 정화인 셈이었다.

▶일본에선 대청소를 ‘오소지(大掃除)’라 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연말에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새출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금도 일본 학교에서 청소는 학생들이 직접 한다. 그러나 요즘 일본 학생들은 “청소가 너무 힘들다”며 학부모들에게 투정이 많다. 그러자 담임 경력 20년의 한 교사는 언론 기고에 “청소를 하면 책임감, 협동심,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선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의 눈을 의식한 국가적 대청소가 이뤄졌다. 단순한 거리 청소가 아니라 도시를 새롭게 정비해 묵은때를 벗기는 도시 정화였다. 이런 차원에서 상계동과 목동 같은 빈민촌이 철거됐는데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상계동 올림픽’까지 등장했다. 당시 공항 근처 학생들은 외국 정상들이 지나가는 도로에서 환영 인파로 나갔다가 쓰레기까지 줍고 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전 국민 대청소 운동’을 제안했다. 추석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토를 청소해 손님을 맞이하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는 관광 진흥을 위해 “전국 단위로 청소를 좀 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때도 대청소 운동을 했고, 성남시장 때는 모란시장을 정비했다. 이번 대청소에는 정부 부처와 새마을운동중앙회, 한국자유총연맹 등이 참여한다. 보수 정부가 이런 관제 운동을 제안했다면 “시대착오적”이라며 시민단체들이 들고일어났겠지만 이번엔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