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경기도에서 30대 남자가 시각장애를 앓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아들로부터 범행 사실을 들은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범죄 은폐에 가담했다. 아들과 함께 인근 야산에 남편 시신을 암매장했고 경찰에는 “남편이 섬으로 여행 간다고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허위로 신고했다. 아들과 함께 구속된 뒤 어머니는 “아들 장래가 걱정돼 그랬다”고 토로했다.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남편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아들과 함께 남편 시신을 암매장한 어머니도 “아들이 감옥 가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고 했지만 함께 쇠고랑을 찼다.
▶역사에는 지나친 자식 사랑이 자식의 삶을 망친 사례가 많이 있다. 아들 네로를 낳은 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한 아그리피나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클라우디우스가 친자식 아닌 네로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을까 불안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아그리피나가 남편을 독살하고 아들을 황위에 앉혔지만 자신도 네로에게 살해당했다고 썼다. 네로는 그 후 폭정을 일삼다가 시해당했다. 아그리피나가 아들에게 권력욕이 아니라 효심을 가르쳤다면 비극을 면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도 맹목적인 자식 사랑이 오히려 자식을 망친 얘기가 나온다. 경찰관 아버지가 성폭행에 연루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죄 없는 아들 친구를 범인으로 몰아 감옥에 보낸다. 그러나 이 경찰은 아들이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피눈물을 쏟는다.
▶엊그제 울산에서 40대 남자가 어머니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남자의 어머니도 아들의 범행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이 범죄 사실을 알게 될까 걱정해 치료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까지 미루다가 상태가 위중해진 뒤에야 남편이 부른 119 구급차에 실려 갔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아들에게 난자당해 죽어가던 어머니가 거실 바닥에 떨어진 아들 손톱을 먹어 증거를 없애려 하는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
▶많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한다고 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윤리관을 심어주는 것도 자식 사랑하는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당장은 가슴 아파도 잘못한 자식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성숙한 자식 사랑이다. 어머니를 찌른 남자는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죗값을 치르고 세상에 나왔을 때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는 것이 부모의 진짜 자식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