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노동을 뜻하는 영어 단어 ‘labor’는 같은 철자의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고생이나 고난을 뜻했다. 독일어로 노동인 ‘Arbeit’도 비슷하게 역경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프랑스어로 노동인 ‘travail’은 고된 일이라는 뜻도 있지만 어원을 따지면 고문이란 뜻까지 있었다. 하나같이 고역이라는 험한 뜻을 담고 있는데 노예가 노동을 담당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용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지금 시대에서 생활을 위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일하는 행위를 뭐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할까. 우리 헌법 제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勤勞)의 권리를 가진다’, 2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고 하는 등 ‘근로’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반면 노동조합법, 노동위원회법 등과 같이 ‘노동(勞動)’을 쓰는 법도 상당하다.

▶근로와 노동 사이에는 약간의 대립적 긴장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보수 진영은 근로자의 날과 근로자를, 진보 진영은 노동절과 노동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노동계는 오래전부터 ‘근로’라는 용어는 ‘부지런히 일함’을 뜻해 국가나 기업가가 통제하는 뉘앙스를 준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노동이라는 용어로 바꾸자고 했다. 일제가 1940년대 ‘근로보국대’ 등 용어를 쓴 점을 들어 근로라는 말은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도 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근로’와 ‘노동’이라는 용어는 별 차이 없이 쓰였다. 국사편찬위가 번역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근로라는 단어가 모두 198회 쓰였다. 세종실록 1권에 세종이 즉위년 9월 20일 특산품 진상에 대해 “충청도는 농사 실패가 심하니 무릇 근로하는 백성들에게 폐가 되는 물건은 일절 금하라”고 명했다는 식이다. 문맥상 ‘애써 일한다’ ‘부지런히 힘쓴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반면 왕조실록에 노동이라는 단어도 28차례 나오는데 의미 차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가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는 법안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노동 관련법을 여야가 합의 처리한 것은 희귀할 정도인데 그게 노동절 개명이었다. 5월 1일을 뭐라고 부르든 경제가 좋아져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근로자(또는 노동자)들의 소망일 것이다. AI 로봇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에 좋은 일자리 만들 수 있는 노동 개혁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