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였지만, 로버트 레드퍼드 자신은 외모가 콤플렉스였다. 금발과 푸른 눈, 그리고 환한 미소 때문에 연기는 보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를 연기했을 때, 만장일치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썼다. 한 비평가는 “콜센터 자동응답기 같은 연기”라고 적었다. 실제로 로버트 레드퍼드는 오스카 연기상을 받은 적이 없다. 후보에 오른 것도 ‘스팅’ 한 번뿐이다. 오스카 트로피는 감독상(‘보통 사람들’)과 공로상으로 받았다.
▶스크린에서는 ‘만인의 연인’이었지만, 스크린 밖 인생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어머니는 그가 10대 시절 쌍둥이를 낳다 하늘로 떠났다. 쌍둥이 누이들도 그때 죽었다. “신에게 처음 배신감을 느낀 순간”이라고 했다. 자식 넷을 뒀는데, 하나는 생후 2개월 만에 요람에서 숨졌다. 장남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다음이었다. 장녀와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은 총을 맞아 세상을 떠났고, 목숨은 구했지만 이후 그 장녀 역시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를 구원한 건 결국 영화였다. 할리우드 안팎의 많은 영화인이 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선댄스 영화제’를 꼽는다. ‘내일을 향해 쏴라’로 대성공을 거둔 레드퍼드는 1981년,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였던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따서 ‘선댄스 재단’을 세운다. 미남 미녀와 자본을 우선하던 할리우드에 반기를 들었고, 적은 돈으로 개성 강한 작품 만드는 독립 영화 감독·배우들을 후원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대런 아로노프스키(블랙 스완), 스티븐 소더버그 등 수많은 젊은 감독들이 그를 ‘선댄스의 아버지’로 추앙한다.
▶레드퍼드는 늘 좁은 스크린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영화만큼 많은 시간을 환경운동에 바쳤다. 50년 동안 천연자원보호위원회 이사로 일했고,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유타의 아름다운 협곡에 6차선 고속도로와 석탄발전소를 만든다고 하자 몸으로 막았다. 개발을 원한 주민들은 그의 사진을 불태우기도 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마크 러펄로 같은 배우들이 그를 롤모델로 여긴다.
▶많은 사람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내일을 향해 쏴라’는 레드퍼드와 폴 뉴먼이 쌍권총을 쏘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클로즈업 정지 화면으로 끝난다. 숱한 영화가 따라 한,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저마다 ‘내 인생의 레드퍼드 영화’가 있겠지만, 말년의 두 편을 추천한다. 여든한 살에 찍은 ‘밤에 우리 영혼은’(2017)과 이듬해 찍은 ‘노인과 총’(2018)이다. 과장이나 체념 없는 노인의 사랑과 자유가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