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악 국가 네팔은 ‘현대 속의 과거’ 같은 나라였다. 2008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노예제를 마지막까지 유지한 나라이기도 했다. 왕정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컸던 탓에 공화정 전환 이후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공화정 전환 이후에도 정정은 불안했고 국민 삶도 나아지지 않았다. 공화정 선포 이후 17년간 총리가 13번 바뀌었지만 몇몇 좌파 정당의 유력 정치인 서너 명이 돌아가면서 회전문 집권을 반복했다. 며칠 전 물러난 올리 총리도 총리직만 4번째였다. 지배층은 바뀌었지만 부패와 독재는 그대로였다. 경제도 바닥을 기었다. 1976년부터 1991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톱 5’였는데 지금도 나아지지 않고 최빈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네팔에서 지난주 발발한 대규모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궁을 비롯한 주요 정부 시설이 불탔다. 전직 총리 부인은 중화상을 입었고 한 장관은 발가벗겨진 채 강에 던져졌고 매를 맞았다. 네팔의 부유층 자녀들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자랑 삼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행태도 시위를 촉발한 원인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할리우드 스타의 자녀들이 부모 덕분에 좋은 배역을 받는 것을 ‘네포(네포티즘. 족벌주의) 베이비’라 하는데, 네팔 특권층 자녀들은 ‘네포 키즈’라 불리며 지탄을 받아 왔다.
▶이번 시위의 이면엔 네팔인의 고단한 삶이 깔려 있다. 네팔 인구의 10%에 가까운 270만명이 해외에 나가 막노동과 식모살이로 돈을 번다. 그렇게 번 돈이 GDP의 26%를 넘는다. 이들은 고된 외국 생활에서 고국의 가족과 소셜미디어로 안부를 주고받는 게 유일한 낙이다. 정부가 자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퍼진다고 소셜미디어를 모두 막아버리자 이 가족 간 대화 통로가 차단돼 버렸다. 여기서 분노가 폭발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 의지해 생계를 꾸리던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반발했다.
▶역대 친중국 정권이 인프라를 짓는다며 빌려온 중국 돈을 착복한 것도 분노를 샀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며 돈을 빌렸는데 일부를 빼돌려 자기들 배를 채우고 늘어난 빚 부담은 가난한 국민에게 떠넘겼다. 중국이 인프라 공사에 네팔인을 배제하고 중국인만 쓴 것도 반발을 샀다. 네팔은 젊은 나라다. 국민을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중간인 나이가 25.3세다.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도 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분노가 권력과 부를 소수가 독점한 네팔의 근본적 변화로 승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