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미 언론 폴리티코는 “2017년 워싱턴DC 도심에서 IMSI(가입자 식별 인증키) 캐처가 다수 발견됐으며, 포렌식 결과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연관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IMSI 캐처는 주변 휴대폰들이 ‘가짜 기지국’을 진짜 기지국으로 인식하게 만든 후, 전파를 잡아내 휴대폰 위치, 통화 내용, 문자 메시지 등 민감 정보를 가로채는 장비라고 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부인했고, 미국은 확인해 주지 않았지만 IMSI 캐처가 최첨단 정보전에 활용된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의 존재를 증명했을 때, 인류는 공간을 초월하는 소통 시대를 열었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이제 전파는 소리 없는 총성이 되어 현대 전자전(電子戰) 시대를 열었다. 인터넷·자율주행·스마트시티·원격의료 등 모든 것이 전파로 연결된 사회에서 이제 전파는 경제, 사회는 물론 군사력까지 결정하는 무기가 된 것이다.
▶미국 등 강대국은 적국에서 나오는 전파를 수집하는 데 혈안이다. 주요 정보 도청을 넘어 적국 레이더의 전파 특성을 축적해 유사시 재밍으로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공군의 폭격은 반드시 적 레이더 재밍과 함께 실시한다. 미국은 이 전자파 정보만은 어떤 동맹국에도 제공하지 않는다. 전파로 조종하는 드론은 재밍을 당하면 오작동이 유발돼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로 상대 드론과 미사일을 재밍하는 치열한 전파 전쟁터가 되고 있다.
▶초연결 사회의 필수 인프라인 5G와 곧 다가올 6G 통신망은 경제 전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이 통신 장비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 싸우고 통신 기술 표준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은, 단순한 기술 다툼이 아니라 경제 군사 패권과 직접 관련돼 있다. 결국 전파는 정치와 범죄까지 바꾸고 있다. 튀르키예 등에선 ‘가짜 기지국’을 이용해 정치인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동남아에선 이 장비가 범죄 조직의 금융 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아직 조사 중이지만 이번 ‘KT 소액 결제 해킹 사건’에도 ‘가짜 기지국’이 등장했다. 가짜 기지국은 진짜 기지국보다 강력한 신호를 보내 주변 스마트폰을 강제로 연결한 후, 사용자의 고유 식별 정보인 IMSI를 탈취해 해킹하는 수법이다. ‘가짜 기지국’은 더 이상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이러다 ‘밤새 휴대폰은 안녕하셨나요’라는 인사가 등장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