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위작 논란이 생긴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From Point) No.800298'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술품 위작 범죄는 1945년 체포된 네덜란드의 판 메이헤런 사건이다. 처음에는 반역죄였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국보급 화가 베르메르의 진품들을 나치 2인자 괴링에게 팔아넘겼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는 “내가 그렸다”고 주장했고, 판사·전문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르메르의 ‘신전에서 설교하는 젊은 예수’를 똑같이 그려냈다. 매국노는 이제 나치를 속여 넘긴 국민 영웅이 됐다. 마지막 재판에서 그는 “위조 작가로서 나의 승리는 창조적 예술가로서의 패배였다”며 기염을 토했다.

일러스트=이철원

▶1994년 네덜란드 화가 레르트 얀센의 작업실을 급습한 경찰은 아연실색했다. 작품 1600여 점 빽빽한 그 방은 ‘20세기 거장의 미술관’이었다. 마티스·레제·브라크·피카소·샤갈…. 그는 “아침엔 샤갈의 드로잉, 점심엔 아펠의 유화, 오후엔 피카소를 몇 장씩 그려냈다”고 진술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고백이 더 충격을 줬다. 얀센이 그린 위작을 아펠에게 “당신 작품 맞냐”고 물었을 때, 아펠이 주저 없이 “내 작품”이라고 대답한 천재적 재능이었다. 그는 해당 작가의 시대에 따른 안료 변화까지 연구했다.

▶총선 공천의 대가로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이우환 그림이 ‘가짜’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작품은 작가가 1970년대부터 시작한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 중 하나다. 각각 점과 선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공간·시간의 흐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특검이 진품 여부를 물었는데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위작’,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진품’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우환 그림은 2016년에도 무려 13점이나 위작 논란이 있었다. 최고가가 31억원에 팔리는 등 생존 작가 중 그림 값이 가장 비싼 작가이지만, 작품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아 작품 번호가 겹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작품이 꽤 많다. 물론 작가 본인은 그때마다 강하게 부인하며 모두 ‘진품’이라 주장해왔다. 위작 판정을 받게 되면 작품의 시장 가치는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림 로비 사건에서 위작 논란이 벌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뇌물죄’ 성립을 피하기 위해서다. 진품이 아니라면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고, 그렇다면 ‘대가성’ 주장도 힘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위작’이라 강변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속아서 산 그림을 선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뇌물죄를 피하려고 그런다지만 미술계조차 진품, 위작 판정이 갈린다니 보기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