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4세 고시'로 불리는 영어 유치원 입학시험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7월 서울 시내의 한 학원가에 의과대학 준비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저희 아이가 SR 2.2인데 빅3 합격 가능합니까?”

암호 같지만 ‘7세 고시’ 준비하는 엄마들에겐 평범한 질문이다. SR은 ‘Start Reading Test’의 약자다. 30분의 제한 시간 동안 긴 지문 여러 개를 읽고 수능처럼 문제를 푼다. SR 2.2는 미국 초등생 2학년 2학기 정도 수준이다. 쓰기·듣기·문법·말하기 테스트는 별도다. 보통 대치동에서 7세 고시를 치르려면 SR 3 이상은 나와야 한다. 당연히 대부분 떨어진다. 그래서 ‘레테’(레벨 테스트) 통과를 위한 학원을 다닌다.

일러스트=김성규

▶7세도 늦다며 ‘4세 고시’가 그래서 나왔다. 소위 빅3·빅7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다. 관련 르포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런 훈련을 한다. 엄마 없이 20~30분 혼자 앉아 있기, 어른이 아이 손목 잡고 함께 알파벳 쓰기… 아직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이 있으니 기저귀 차고 훈련하기도 한다. 4세 고시 대비 개인 과외도 등장했다.

▶수능 영어는 절대평가로 쉬워졌다. 그런데도 4세·7세 영어 고시 열풍이 부는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입시 영어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초등 저학년부터 시작한다는 수능 수학·과학 선행 학습에 영어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하고 싶다는 소망은 그다음이다. 대한민국 학부모 90%가 의대를 선호한다는 요즘, 영어 유치원 열풍의 바닥에도 ‘의대’가 있다.

▶최근 한 시민단체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7세 고시가 아동 학대라는 것이다. 인권위는 어린이들의 놀이·휴식·자기 표현등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판단, 교육부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교육부가 해당 유치원 23곳을 적발하고 일부 교습 정지와 과태료 처분을 내렸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기라는 비판이 많다. 영어 유치원 열풍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현 입시 제도와 학부모의 불안이다. 아이가 자유롭게 놀면서 자라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 경쟁과 입시 불안 때문에 아이들에게 선행 학습을 시킨다. 국책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영유아 2150명과 학부모를 면접·연구하고 보고서를 펴냈다. 결론은 2~5세 때 사교육을 경험한 아이들과 그러지 않은 아이들 성적이 대체로 별 차이 없더라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 어릴 때 사교육 받은 아이들의 자아 존중감과 삶의 만족도는 낮은 사례가 많이 보고됐다. 우리 사회의 지독한 경쟁은 많은 불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는 기괴한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