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K팝 그룹 BTS가 2020년 발표한 ‘Life Goes On’은 한국어 노래로는 최초로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다. 전 세계 BTS 팬들이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같은 가사를 따라 불렀다. 일부는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적어 외웠지만 욕심 많은 팬들은 아예 한글 공부에 나섰다. BTS 팬클럽이 ‘아미’인데 ‘아미가 공부하는 훈민정음’이란 뜻에서 ‘아민정음’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그 후 K팝이 더욱 세계화되며 K팝 가사도 영어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노래 주요 부분은 여전히 한국어다. 세계적으로 흥행 중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르는 ‘골든’이 대표적이다.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같은 한국어 가사를 전 세계 젊은이가 흥얼거린다. 로제가 부른 ‘아파트’에 나오는 ‘건배, 건배’도 K팝 팬들에게 익숙해진 한국어다.

▶한국어뿐 아니라 한글의 위상도 전과 달라졌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산은 품질 좋고 세련된 제품이고 한글 상표는 이를 드러내는 ‘힙(hip)’한 문자다. 유럽 선진국들조차 한국산 식료품·화장품을 수입할 때 “포장지에 한글을 꼭 넣어라. 그래야 잘 팔린다”고 당부한다. 자기 나라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한국산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동남아시아의 한 주류 회사는 한국식 소주를 만든 뒤 상표에 한글로 ‘태양’이라 적고 ‘자몽’ ‘요거트’라고 향미까지 한글로 적어 시중에 내놨다. 롯데리아는 지난달 햄버거 본고장인 미국에 1호점을 내며 한국어 간판을 달았다.

▶인도네시아에서 국회의원이 받는 과도한 특혜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그런데 시위대가 정부를 비판하는 인도네시아어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뜨린다고 한다. 정부가 인터넷에서 구호를 차단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글을 암호처럼 쓰는 것이다. 한류를 접한 상당수 젊은이가 한글을 읽을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시위 방식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알파벳이 했을 역할을 한글이 하고 있다.

▶한글은 뛰어난 표음문자여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다양한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살려 한글을 로마자처럼 여러 나라가 쓰는 국제 문자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다. 커피(coffee)의 f 발음처럼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은 ‘ㅍ’ 밑에 ‘ㅇ’을 붙여 자음을 추가하고 성조가 있는 언어는 기호를 덧붙이면 된다. 한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고 있으면 그런 날이 정말로 올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