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난성 즈장(芷江)현에는 ‘항일 전쟁 승전 기념관’이 있다. 1945년 8월 21일 중국군이 일제 침략군의 첫 항복문서를 받아낸 장소다. 당시 항일 전쟁을 이끌던 국민당은 최후 격전지였던 즈장으로 일본군 부총참모장을 불러내 군 배치도 등을 넘겨받았다. 국민당 장제스 사령관은 1946년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모양이 ‘혈(血)’ 자였다. 중국의 피로 얻어낸 승리라는 뜻이다. 중국 주둔 일본군의 공식 항복은 9월 9일이었다. 천황이 8월 15일 항복했지만 그 후에도 중국 전역에선 소규모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과 서유럽이 2차 대전 승전일로 삼는 것은 5월 8일이다. 독일이 프랑스에서 서명한 항복문서가 효력을 발휘한 날이다. 그런데 스탈린은 소련이 빠졌다며 베를린에서 독일의 항복문서를 다시 받았다. 그래서 러시아 승전일은 5월 9일이 됐다. 이탈리아 해방의 날은 4월 25일이다. 이탈리아 국민이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와 나치 세력을 제압한 날이라고 한다. 1차 대전은 참전국이 한날한시에 전쟁을 멈췄지만 2차 대전은 나라별로 복잡했다.
▶일본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 승전일은 당연히 다르다.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다. 그 덕에 우리가 해방됐고 중국도 승전국이 됐다. 미국이 없었으면 중국을 일본이 석권했을 수도 있다. 승전의 주역 미국이 일본의 공식 항복을 받은 날은 1945년 9월 2일이다. 도쿄만에 정박한 미 전함 미주리호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한 날이다. 미국의 맥아더·니미츠 장군 외에 중국·영국·소련·호주·캐나다·프랑스·네덜란드·뉴질랜드 등 9국 대표가 항복을 받았다. 그래서 미·영·소 등의 태평양전쟁 승전일은 9월 2일이다. 중국 장제스는 이튿날인 9월 3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고 경축 국기를 내걸었다. 이듬해 9월 3일을 ‘항일 승리 기념일(전승절)’로 공식 지정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을 전승절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오쩌둥이 1951년 “전승절을 9월 3일로 통일하라”고 했다. 중국이 승전국 대열에 있던 날짜와 의미를 가져오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군과 주로 싸운 것은 국민당군이었고 공산군은 전력 보전에 주력했다. 그 때문인지 공산당은 10여 년 전까지 전승절 날짜를 강조하지 않았다.
▶9월 3일 전승절을 다시 꺼낸 건 시진핑이다. 2015년엔 70주년 열병식도 열었다. 당시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쳤다’고 하더니 이번엔 ‘공산당이 승리를 주도했다’고 한다. 땅속의 장제스가 벌떡 일어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