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에 백악관 연회장 신축 공사의 첫 삽을 뜬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했다. 2억달러(약 2800억원) 프로젝트로, 최대 650명 입장 가능한 건물이다. 공개된 설계도를 보면 양뿔 문양 원기둥을 세우고 화려한 아치형 창에 바닥 자재는 대리석이다. 마치 그리스 아폴로 신전 같다. 또 기둥·천장·창문 모두 금박을 두르겠다고 한다.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은 “대통령 마음은 이미 건축가”라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주 건축에 관한 행정명령도 발표했다. 제목은 ‘미국의 연방 건축물을 다시 아름답게’. 요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방청사·법원·우체국 등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고전주의’를 따르라는 것. 대칭과 비례를 우선하고 화려함과 권위가 특징인 그리스·로마 양식을 예로 들었다. 또 하나는 ‘브루탈리즘(brutalism)’에 대한 적대감이다. 트럼프는 꼭 집어서 이 양식만은 피하라고 적었다.
▶‘야만적인’이란 뜻의 영어 단어 brutal 때문에 오해받지만, 프랑스어 베통 브뤼트(Béton brut)가 어원이다. ‘노출 콘크리트’란 뜻이다. 현대 건축의 거장을 얘기할 때 첫손 꼽히는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시조다. 전후 재건이라는 숙제를 받아든 가난한 유럽의 건축가들은 값싸고 편리한 콘크리트를 답안지로 제출했다. 일본의 안도 다다오와 한국의 김수근도 그 세례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의 세운상가나 1980년대 강남버스터미널도 그 사례다. 물론 비난도 만만찮다.
▶미국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루탈리스트’에는 부유한 미국인 사업가와 그 아들이 건축주로 등장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건축가에게, 아들은 사사건건 트집이다. 아들 역을 맡은 조 알윈은 “트럼프 대통령을 모델로 연기했다”고 했다. 18세기에 지은 미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은 고전주의 양식이지만, 1960년대에 지은 워싱턴 FBI 본부는 건조한 브루탈리즘이다. 트럼프는 “그때 우리는 건축계 엘리트들에게 사기당한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달도 차면 기울듯, 예술 사조도 마찬가지다. 금칠 좋아하는 트럼프의 미감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기능과 실용을 우선한 브루탈리즘 건축에 대한 피로가 높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공공 건축을 볼 때면 한숨 나올 때가 많다. 꼭 많은 돈을 쓰자는 것이 아니다. 100년의 문제다. 우리도 한번 제대로 논의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