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중국 국민당·공산당 내전이 한창일 때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여러 차례 회담을 요청했다. 공산권 맹주인 소련 지지와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탈린은 ‘마오는 믿기 어려운 인물’이란 이유로 계속 거절했다.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고 1949년 12월 스탈린 70세 생일을 맞아서야 마오의 모스크바 방문을 허락했다. 마오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중·소 동맹을 맺기 위해 꾹 참고 스탈린을 만났다. 당시 북한에선 김일성이 아니라 박헌영이 갔다.

▶1950년 4월 김일성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나 ‘6·25 남침 승인’을 받았다. 스탈린은 “마오 동의를 받으라”는 조건을 달았다. 김일성은 5월 베이징에서 마오를 설득했다.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김일성은 10월 마오에게 달려가 ‘파병’을 간청했다. 스탈린과 마오는 전보로 파병을 논의했다. 당시 스탈린은 6·25 개입을 숨기려 했다. 김일성과 마오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흐루쇼프가 전임인 스탈린을 격하·비판하자 김일성과 마오 모두 경악했다. 굳혀가던 독재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었다. 1958년 흐루쇼프가 방중했을 때 마오는 그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맥주병’인 흐루쇼프를 수영장으로 데려가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1950년대 흐루쇼프, 마오, 김일성이 한 자리에서 찍은 사진은 있지만 셋이 회담했다는 기록은 안 보인다. 1960년대 대약진 운동 실패로 중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했는데 흐루쇼프는 식량 지원은커녕 중국에 보낸 기술자와 과학자를 전부 불러들였다. 중·소 분쟁이 폭발했다. 김일성은 그 틈에서 ‘등거리 외교’로 실리를 챙겼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성공하고 소련이 붕괴하자 서열이 중·러·북으로 뒤바뀌었다. 시진핑 집권 전까지 중국은 힘을 숨기려 했다. 러시아도 동북아엔 별 관심이 없었다. 북한은 신(神)이나 다름없는 지도자가 다른 정상들과 섞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50년대 이후 북·중·러 정상은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전승절에서 한·중·러 정상이 먼저 만나는 일이 벌어졌다.

▶시진핑은 전승절을 패권의 자랑 수단으로 쓰려 한다. 푸틴은 북한군 파병을 받았다. 스탈린은 북·중 정상을 부르지 않았지만 시진핑은 다르다. 김정은이 내달 3일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면서 북·중·러 정상이 사상 첫 정상회담을 할 기회가 생겼다. 과거 북·중, 북·러, 중·러 정상이 3각으로 소통할 때도 한반도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