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지난해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영국 옥스퍼드대와 런던의 명문고 재학생 각 5명씩 10명에게 우리나라 수능 영어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다. 1등급인 90점대를 맞은 학생은 4명에 불과했다. 4명은 2등급에 해당하는 80점대였고 2명은 3등급인 70점대를 맞았다. 영어 원어민 중에서 공부 좀 한다는 참가자들도 쩔쩔매며 “문제가 의미 없이 어렵기만 하다”고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도 생전에 대입 논술 시험 문제를 비판한 적이 있다. 평생 글을 쓴 자신도 대입 논술에 자신이 없다며 대학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문제를 받아든 석학의 입에서 ‘아이고’ 소리부터 나왔다. “내가 이거 시험 치면 큰일 날 뻔했네. 이렇게 부분적인 걸 써 놓고 내 생각을 써 봐라 하면….” 이런 식의 논술은 객관식 OX 문제보다 더 큰 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이 전 장관은 경고했다. 그러자 당시 서울대 출제위원장이 “학생들은 풀 수 있다”고 반박하면서 작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 킬러 문항은 없앴다고 하지만 일부 수능 문제의 난도는 이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과목마다 터무니없는 수능 문제에 대한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닐 정도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지문으로 한 대입 모의고사 문제를 단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니 말 다 했다. 이렇게 문제가 터무니없이 어렵거나 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수록 학원들은 매출이 증가해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

▶이번엔 한 고교 화학 교사가 “단언컨대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국가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을 딴 사람도 수능 화학에서 만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글을 써서 화제다. 수능 화학은 “어린 학생들에게 시간 내에 빨리 문제를 푸는 요령만 익히게 하는 방식”이라 화학 잘하는 것과 상관이 없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화학물리학 박사인 김성근 포스텍 총장도 “교사의 글을 보고 그 문제를 풀어봤는데 시간 내에 답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의 수능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기술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능 본래 취지인 폭넓은 사고력 평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변별력 평가를 위해 난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챗GPT에 물으면 실시간으로 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문제는 지적이 쌓이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데 교육 문제만큼은 요지부동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