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프랑스 북부 알자스-로렌은 원래 독일의 모태였던 신성로마제국 영토였다. 하지만 17세기에 프랑스가 무력 점령하며 두 민족이 섞여 살게 됐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주민의 국적도 바뀌었고 서로를 추방했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자 독일 땅이 됐고 1차 세계대전 이후엔 승전국 프랑스 영토가 됐다. 2차 대전 초기에는 독일이, 전쟁이 끝난 뒤 다시 프랑스가 차지했다. 이곳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다툼의 배경이었다. 알자스-로렌에만 프랑스 철광석의 90%가 매장돼 있다.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업지대인 수데텐란트도 독일인이 이주해 오며 분쟁의 씨앗이 됐다. 20세기 초 체코 인구가 1300만명이었는데 수데텐란트에만 독일계 300만명이 정착했다. 히틀러가 ‘위대한 독일 재건’을 선언하며 수데텐란트를 합병하려 들자 이곳의 독일계 주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를 지켜본 체코인들 뇌리에 독일계는 매국노 배신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2차 대전 후 수데텐란트에서 독일인이 쫓겨나는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와 마주 보는 돈바스가 그런 곳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석탄·철강 산업이 일어나자 러시아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훗날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는 흐루쇼프도 러시아를 떠나 돈바스의 금속 공장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돈바스 내 러시아계 인구는 1920년대 60만명에서 1950년대 250만명으로 폭증했고 러시아계 비율도 40%까지 치솟았다. 돈바스가 오늘날 친러 성향을 띠게 된 이유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반대하며 친러 정책을 펴다가 쫓겨난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도 돈바스 출신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우 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돈바스 전역을 러시아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트럼프도 푸틴 편을 들었다. 러시아는 강대국이고 이미 돈바스 대부분을 점령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돈바스에 러시아계가 많이 산다는 이유로 2차 대전 이후 그어진 국경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반대한다.

▶국경이 새로 그어질 때마다 비극이 반복되고 새로운 분쟁의 빌미가 된 것이 유럽사다. 2차 대전 이후 승전국들은 폴란드와 독일 사이에 흐르는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을 국경으로 정하며 강 동쪽의 독일 땅을 폴란드와 소련에 줬다. 두 강의 오른쪽에 살던 독일계 1000만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최대 100만명이 학살·굶주림·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 비극이 돈바스에서 재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