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2000년 6·15 선언 다음 날, 민혁당 핵심 인물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장은 “상황이 바뀌었다 해도 민혁당은 반국가 단체로 볼 수밖에 없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남파 간첩 김석형(당시 87세) 등 비전향 장기수 7명은 방청석에서 국보법 철폐 구호를 외쳤다. 민혁당 일부 인사는 “선생님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라며 고개를 숙였다. 석 달 뒤 김석형 등 63명이 북으로 떠났다.

▶김정일은 이들을 “신념의 화신”으로 부르며 영웅화했고, 최고급 주택과 약을 줬다. 김모(83), 전모(85), 리모(87) 등 8명은 늦장가를 보내줬다. 김석형은 북송 6년 뒤 93세로 사망했다. 1993년 최초의 북송 장기수였던 이인모도 89세까지 살았다. 그러나 한국 감옥에서 30~40년 고문과 탄압에 시달렸다는 이들의 장수와 건강은 뜻밖에도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가져왔다. 북한 남성 수명은 평균 71세로 발표되지만 실제는 훨씬 짧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건강과 장수는 감옥 생활 2~3년이면 산송장이 되는 북한에선 상상 못 할 일이었다. 한국은 북한 간첩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더구나 나중에 석방시켜 북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며 북 주민들은 북 체제의 우월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다시 보게 됐다.

▶2000년 북송 때 전향 등 이런저런 이유로 북송을 거부했던 장기수들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강제 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라며 뒤늦게 비전향 장기수 자격까지 인정해 줬다. 43년을 복역하고 1995년 석방된 안학섭(95)씨는 2000년 북송 때 “미군이 한반도를 떠날 때까지 투쟁하겠다”며 한국에 남겠다고 했다. 미군 탓을 들었지만 실제 그는 북송 두 달 전 30세 연하의 피아노 강사와 결혼했다. 그의 나이 70세 때였다. 아내는 교도소에서 독학했다는 지압 때문에 알게 된 환자였다고 한다. 안씨는 당시 “비전향 장기수들의 남북 자유 왕래를 보장하라”고도 했다.

▶안씨를 포함해 생존 장기수 6명이 정부에 북송을 요구하고 있다. 안씨는 20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군이 제지하자 통일대교에서 북한 인공기를 펴 들었다. 6명의 북송 요구에 정부가 침묵하는 건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들 문제에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서 평생 감옥살이에 고문까지 당했다는 북송 요구 장기수 6명은 지금 96세, 95세, 94세, 91세 2명, 80세다. 김정은은 안 그래도 북 주민들에게 퍼져 있는 한국 동경을 이들이 더 증폭시킬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