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스로 지도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대선에서 패한 뒤 몇몇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세계지도를 보여주며 그린란드를 가리켰다. 당시 그는 “그린란드 크기가 정말 엄청나지 않으냐”며 “미국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3년 후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매입해 미국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가 엄청나게 크다고 한 그린란드 면적은 실제로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 알래스카보다 약간 큰 정도로 미 본토의 약 4분의 1이다. 그런데 지도상으로는 오히려 미국의 1.8배나 돼 보인다. 이런 면적 왜곡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둥근 지구를 평면 지도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구 모습과 거의 같은 지구본에서는 대륙별 나라별 면적이 실제와 거의 같게 표시된다. 그런데 평면 지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위도·경도를 종이 위 가로·세로 좌표로 옮기는 과정에 수학이 개입하는데, 면적·거리·각도 등 모든 요소를 정확히 살릴 수는 없다. 각도를 보존하면 면적이 달라지는 식으로 왜곡이 불가피하다.
▶트럼프가 기자들에게 보여준 지도는 메르카토르 지도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도다. 이 지도는 정확한 각도를 지키는 대신 면적 왜곡을 인정한 방식이다. 1569년 첫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400년 넘게 표준 세계지도로 자리 잡았다. 각도는 정확하지만 면적과 거리는 실제와 크게 다르다. 당연히 이 지도에서 두 지점을 이은 직선은 실제 최단 거리가 아니다. 평면 지도상 서울·LA 최단 거리는 하와이 위쪽을 지나지만 실제 최단 거리는 알래스카를 지난다. 북반구에서는 북쪽으로 휘어진 곡선, 남반구에선 남쪽으로 휘어진 곡선이 최단 경로다. 이를 대권(大圈) 항로라고 한다. 항공사가 세계 지도에 노선을 표시할 때 나오는 곡선이 이것이다.
▶아프리카연합이 메르카토르 지도 퇴출 운동에 나섰다. 아프리카 면적 14분의 1에 불과한 그린란드가 메르카토르 지도에선 비슷한 크기로 보여 왜곡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왜곡이 아프리카 위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이퀄 어스(Equal Earth) 지도를 국제 표준으로 삼자고 한다. 2018년 첫선을 보인 이 지도는 위도를 변환하는 함수를 조정해 아프리카와 남미의 모양을 실제와 최대한 비슷하게 유지하면서도 면적을 정확히 나타내도록 했다. 메르카토르 지도는 아프리카 노예무역에도 쓰였다. 이런 구원(舊怨)이 이번 퇴출 캠페인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