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알프스 빙하 밑에 잠들어 있던 5000년 된 냉동 미라 남성이 발견됐다. 소지품에서 항생·지혈·살충 효과가 있는 약용 버섯이 나왔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약초를 썼다는 물증이었다. 고대인들은 병에 걸리면 이런저런 식물의 잎과 뿌리를 씹었다. 운 나쁘면 앓거나 목숨을 잃었지만 아주 가끔 치료 효과를 봤다. 그 경험이 축적되고 후손에게 전달됐다. 인류의 약초 목록은 우리 조상이 목숨 걸고 실행한 자가 생체 시험의 결과다.
▶자가 시험을 통한 신약 찾기는 1만년 전쯤 시작됐다.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중세 약학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조제서’를 쓴 16세기 독일 학자 발레리우스 코르두스는 신약의 재료가 될 식물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모기가 득실대는 늪지대를 헤매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29세에 목숨을 잃었다. 1800년대 미국 치과 의사 호러스 웰스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아산화질소를 들이마신 뒤 이를 뽑는 마취법을 창안했지만 자신은 마취제 독성 중독으로 폐인이 되고 말았다. 황열병 매개체를 알아내려고 일부러 모기에게 물렸다가 목숨을 잃은 의사도 있다.
▶인체 대상 실험엔 어두운 이면도 드리워져 있다. 나치 과학자들은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을 결핵균에 억지로 감염시켰다. 미국 의사들이 1940년대 과테말라에서 한 매독 감염 실험과, 간염 백신 개발 목적으로 뉴욕의 장애인 학교인 윌로브룩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간염 병원균에 감염시킨 사건 등은 빗나간 의료 연구의 대명사가 됐다.
▶개발 중인 항암제를 자기 몸에 주사해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가 기소된 부산의 한 대학 병원 교수가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국내법상 임상 시험을 하려면 목적과 대상을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 이 교수는 임상 시험 전에 자기 몸을 대상으로 약효를 시험했는데, 이것이 법 위반인지 아닌지를 두고 벌어진 분쟁에서 법원이 교수 손을 들어줬다.
▶사람 몸을 병균이나 개발 중인 신약에 노출하는 ‘인체 유발 반응 시험’은 1980년 이후만 해도 전 세계 300건이 넘는다. 코로나·지카 바이러스 백신 개발 때도 이 과정을 거쳤다. 인류를 천연두에서 해방한 제너의 종두법도 이면엔 인체 시험의 제단에 오른 아이가 있었다. 질병 극복을 향한 노력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신약 찾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찾아낸 약용 물질은 결국 몸에 써봐야 한다. 다만, 아무리 숭고한 목적이라도 목숨을 수단으로 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