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제주가 배경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엔 남녀가 따로 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끼리 식사하는 밥상엔 살이 통통한 생선과 건더기 가득 든 국이 올라 있는데, 아내와 딸들 밥상엔 생선 대가리와 멀건 국물만 놓여 있다. 남아 선호에서 비롯된 밥상 차별이다. 실제 우리 삶이 그랬다. 딸이 대학 가겠다고 하면 떨어지라고 시험 전날 미역국을 먹였다는 얘기도 들었다.
▶1971년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남아 선호 상태에서 산아제한은 출생 성비의 극심한 불균형을 낳았다. 자연 상태에서 여아 100명당 남아 103~107명이 태어나는데 1990년 이 수치가 116.5명까지 치솟았다. 셋째의 성비는 209.7명까지 벌어졌다. 불과 한 세대 전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갤럽이 세계 44국에서 ‘자녀를 한 명만 낳는다면 아들과 딸 중 누굴 원하느냐’는 설문 조사를 했더니 ‘딸을 원한다’고 답한 한국인이 28%로 세계 1위였다. 한국인 중 아들을 원한 사람은 15%에 그쳤다. 30년 전엔 한국인 58%가 ‘아들을 원한다’고 했다. 남아 선호가 거의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 56%는 “아들 딸 상관없다”고 했다. 한국 다음으로 딸을 원한 나라는 일본과 스페인 등으로 26%였다.
▶한국은 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압축 변화를 겪은 나라다. 아무리 그래도 한 세대 만에 극심한 남아 선호에서 여아 선호로 뒤집힌 것은 놀라운 변화다. 출생 성비 불균형도 2000년대 중반부터 104명대로 정상화됐다.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나만 낳으면 딸’이란 인식은 더욱 확산하는 추세다.
▶요즘은 효도도 딸이 한다는 세평이 많은 시대다. 한 간호대가 조사했더니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의 82%가 여성이고 그중 딸이 40%를 넘었다. 아들은 15%에 불과했다. 자식 키우는 재미도 딸이 더 준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한 지인은 휴일 산책 나갈 때면 아들은 방에서 게임하고 딸은 먼저 운동화 신고 현관에서 기다려 준다고 했다. 고등교육과 취업, 승진에서 여성 차별이 없어지며 딸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많다. 이제 여성 CEO가 낯설지 않다. 기업 후계 문제나 상속에서 딸들의 목소리는 전과 비교할 수 없게 커졌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